10월 ‘마운스토리’ 경남 고성 연화산
옛 문헌에 18세기 중엽 연화산 첫 등장… 편백·대나무와 조류 등 생태계 뛰어나
연꽃 형상을 닮아 연화산으로 불렸다는 연화산 능선이 사방으로 연결돼 있다. 오른쪽 능선 사이 숲 속 작은 기와집이 옥천사.
‘관하關河가 아득한데, 기러기처럼 남으로 가서, 하늘가를 두루 돌아 철성鐵城에 이르렀네. 물에 접한 산형은 지세를 따라 끝났는데, 공주에 가득한 바닷빛은 사람 가깝자 환하구나.’
조선시대 세종에서 성종까지 무려 여섯 왕 아래에서 핵심적 문신으로 지낸 서거정(1420~1488)이 경남 고성固城을 보고 남긴 시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 서울에서 4시간 남짓 만에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마산이나 함양으로 빙 둘러서 가야 할 정도로 오지였다. 서거정도 오죽했으면 국경의 성이나 요새가 있는 관하가 아득하다고 했을까 싶다.
고성의 대표적인 명산은 1983년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연화산蓮華山(524m). 산세가 연꽃을 닮아 연화산이라 명명됐다고 전한다. 연화산이 도립공원의 주산이며, 연화봉에서 시루봉~성지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 능선과 금태산~혼돈산~남산의 동서 방향 능선이 연화산 정상에서 교차해서 연꽃 형상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연화산 옥천계곡이 옥천사 옆으로 흐르고 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계곡으로 유명하다.
많은 봉우리들이 교차하고 있어 산들이 높지는 않지만 울창하다. 소나무와 참나무, 대나무 등 혼재림도 많고, 특히 느재고개 주변으로 산림휴양객을 위한 편백숲을 조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연화산 등산객들은 느재고개에서 차를 주차하고 산림욕뿐 아니라 연화산 정상을 밟고 원점회귀할 수도 있다. 소나무·대나무와 어울린 편백숲은 사철 상록림을 즐길 수 있다. 능선 위로는 활엽수들이 울창한 산림을 이뤄 가을 단풍도 여느 산 못지않게 뽐낸다. 느재고개 바로 아래 옥천계곡에서도 능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산림을 이뤄 연화산은 어디를 가나 숲과 함께한다.
그 산림 속에 50여 종의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노랑턱멧새, 직박구리, 박새 등이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연화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도 생태계가 잘 이뤄져 있고, 식생이 뛰어난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뛰어난 생태계와 만산홍엽의 첫째 조건은 풍부한 물이다. 느재고개에서 옥천사로 흐르는 옥천계곡은 가뭄에도 사철 마르지 않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덜 추운 날씨를 보인다. 남도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건강한 생태계와 아름다운 경관, 그리고 산 중턱의 이색적인 대밭군락 등으로 인해 꼭 한 번쯤 가볼 만한 산으로 꼽힌다. 이게 산림청이 100대 명산으로 꼽은 이유다.
연화산은 원래 비슬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느재고개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 연화산 유래와 내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옛날에 이 산을 비슬琵瑟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이 산의 동북쪽에 선유仙遊·옥녀玉女·탄금彈琴의 3봉우리가 둘러 있어 마치 선인이 거문고를 타고 옥녀가 비파를 다루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비슬산을 연화산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인조 때 학명대사께서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산세가 돌올突兀(높이 서 있는 모습)하고 쟁영崢嶸(높고 험한 모습)하여 몇 송이의 부용芙溶(연꽃)이 남두南斗(남쪽에 있는 별의 이름)의 곁에 빼어났으니 이것이 연화요, 그 가운데서 옥파가 있어 돌구멍에서 솟아나고 한 갈래의 잔원潺湲(물 흐르는 소리)으로 들리어 암곡岩曲(바위의 구비) 사명寺名을 연화산 옥천사라 하였다. 예로부터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는 샘=西出東流을 옥천이라 했듯이 이곳 옥천사에 흐르고 있는 샘도 그래서 옥샘으로 불린다.’
16세기 고지도에는 고성 무량산이 진산으로 나타나 있고, 현풍 비슬산이 확실하게 표시돼 있다. 당시 연화산이 비슬산이었다면 고성에 무량산과 함께 표시됐을 것이다.
연꽃 형상이라 하지만 풍수 문헌 어디에도 언급 없어
연화산의 옛 명칭을 비슬산이라고 하는 근거는 <삼국유사>권4 ‘의상전교’ 조항에 의해서다. 의상이 중국 유학을 갔다 와서 한반도에 열 곳의 사찰을 창건해서 화엄종을 전했다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에는 태백산 부석사(지금도 영주 부석사 일주문에 태백산 부석사로 돼 있는 걸로 봐서 당시 소백산과 태백산을 같은 태백산 권역으로 봤을 것으로 짐작), 원주의 비마라사毗摩羅寺(사자산 법흥사로 추정),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남악(지리산) 화엄사 등 6개 사찰만 기록하고 있다. 최치원(857~900)이 쓴 <법장화상전>에는 10개의 절이 전부 소개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6개의 절 중 원주 비마라사를 제외한 5곳에 중악 공산(팔공산)의 미리사美理寺, 웅주 보원사, 계룡산 갑사, 전주 무산 국신사國神寺, 한주 부아산 청담사 등이다. 여기서는 태백산 부석사가 아닌 북악 부석사로 소개된다.
하지만 <법장화상전>도 완전히 믿기 힘들다. 창건시기가 의상 사후 100여 년이나 지난 사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요한 사실은 의상은 신라의 삼국통일 전후 생존했던 인물이고, 화엄십찰이 한반도 특정 한 지역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전국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호국불교로서 통일 초기 한반도 전 국토를 골고루 포함시켜 화엄사상 하나로 묶으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북악 부석사는 왕명에 의해 의상이 직접 창건하여 남쪽에 치우친 수도 경주에서 벗어나 북쪽에 위치한 사찰을 중심무대로 한반도 전 지역에 화엄사상의 가르침을 고루 전파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비슬산 옥천사를 연화산의 옛 지명이 비슬산이고, 옥천사는 화엄십찰이라는 근거로 삼는다. 과연 타당한 근거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비슬산은 당시 고지도에도 소개되는 대구와 청도 사이에 있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그 전에는 포산이란 지명을 쓰기도 했다. 이 비슬산에 대한 소개를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서 ‘산 속에 솟아오르는 샘물과 천석泉石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비슬산에는 유가사·용연사·용화사·용천사 등 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는데, 그 가운데 용연사는 경내에 석조계단이 있다. 가까이에 유명한 약수터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용화사의 옛 지명이 옥천사라 불렸다는 설도 전한다. 그렇다면 비슬산 옥천사는 경남 고성의 연화산 옥천사가 아닌 대구와 청도 사이에 있는 지금의 비슬산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옥천사도 고성 옥천사가 아닌 비슬산 옥천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화산 적멸보궁이 연화산 정상 불과 1km도 안 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옥천사의 의상 화엄십찰 근거도 전무
옥천사만의 기록을 살펴보면 연화산의 옥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창녕현 산천조에 ‘화왕산은 현의 동쪽 4리에 있는 진산이다. (중략) 옥천사는 화왕산의 남쪽에 있다. 고려 신돈의 어머니는 바로 이 절의 종이다. 돈旽이 죽음을 당하자 절도 폐쇄되었는데, 뒤에 고쳐 지으려다가 완성되기 전에 돈의 일 때문에 다시 반대가 생겨 헐어버렸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 옥천사와 관련한 내용은 <고려사>와 <동사강목>에도 유사하게 소개된다. 이와 같이 옥천사는 대구의 비슬산 옥천사와 화왕산 옥천사 등 명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장소가 있다.
반면 연화산은 당시까지 어느 문헌이나 고지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슬산에 대한 기록으로 찾아봐도 연화산과의 관련성은 불확실하고, 옥천사와의 연결 고리를 봐도 연화산 옥천사가 화엄십찰이라는 근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화엄사상은 의상이 신라가 통일된 뒤 한반도를 사상적으로 하나의 가르침으로 통일할 필요성이 있어 주장한 내용이고, 전국을 여러 권역으로 나눠 한 지역을 대표할 만한 장소를 선별해서 사찰을 하나씩 창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경남 고성의 연화산 옥천사가 전국의 화엄십찰에 포함될 만한 대표 지역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고성군 홈페이지는 연화산 옥천사를 의상의 화엄십찰 중의 하나로 소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동명이찰의 근거 하나로 연화산 옥천사를 화엄십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성군 담당자는 “아직 연화산 옥천사를 화엄십찰로 명명한 출처를 명확히 찾지 못하고 있다. 옥천사 승려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싣다 보니 연화산 소개내용이 조금 맞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며 “다시 확인해서 출처를 명확히 하겠다. 수정이 필요하면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연화산 느재고개 옆 편백숲을 조성,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구비돼 있다.
연화산의 형세가 연꽃을 닮아 비슬산에서 개명했다는 조선 인조(재위기간 1623~1649) 때 학명대사도 널리 알려진 승려는 아니다. 그의 내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학명대사도 불명확하면 연화산과 옥천사의 근거는 더욱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풍수>에도 ‘무량산(대가면 서쪽에 있는 산)이 고성의 진산이다. 고성에는 동남쪽과 서북쪽으로 좋은 산이 있다. 2대에 일어나서 3대에 높은 벼슬할 땅이다. 고성 서쪽 10리에 봉황이 알을 품는 모양의 옥대는 왼편이 짧고 오른편이 길게 돌아서(중략) 고성 동쪽 20리에 뱀이 개구리를 쫓는 모양의 산이 왼편은 길고 오른편은 짧게 서북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열리고 좌우에 좋은 흙이 북돋아 주니 대대로 문장이 날 땅이다. (후략)’ 라고 소개하고 있다.
비슬산이나 연화산의 유래인 옥녀가 비파를 타는 형국 또는 연꽃 닮은 형세라 설명할 정도면 풍수의 기본인데, 풍수학 문헌 어디에도 연꽃이나 비슬과 관련한 거문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더욱이 옛날에는 거문고 타는 형승이었다가 어느 날 돌연 연꽃 닮은 형세로 바뀌었다면 신뢰도 주지 못할 것 같다. 논리적으로도 연결이 안 되고 설득력도 없다.
그렇다면 연화산이 언제부터 등장할까?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성현 산천조에는 ‘무량산은 현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고성의 진산이다’라고 몇몇 산과 함께 소개하지만 연화산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옥천사에 대한 기록도 없다. 개인 문헌인 <연려실기술> 지리전고나 <택리지>에도 연화산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고성 연화산이 고지도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8세기 중엽 전국 군현지도 <영남지도> 진주목 지도에서다.
18세기 중엽 전국 군현지도 <영남지도> 고성현에는 무량산만 진산으로 표시돼 있을 뿐이다.
16세기부터 고성의 진산은 무량산으로 소개
고지도에서는 18세기 중엽 전국 군현지도 중 <영남지도> 진주목 지도에 연화산 옥천사라고 처음 등장한다.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가 연화산이라 명명했다는 시점보다 100여 년 지난 시기다. 고성현 지도에는 진산 무량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몇 개의 산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19세기(1861년) <대동여지도>에는 연화산이 정확히 등장한다. 그리고 20세기 일제가 한반도 지명을 정리하기 위해 조사한 <조선지지자료>에도 연화산은 나온다.
이같은 상황으로 볼 때 어떻게 이렇게 바뀌였을까? 연화산은 17세기나 18세기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연화산 옥천사에 대한 의상의 화엄십찰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너무 미약하여 내세우기 민망할 수준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산림청이 100대 명산으로 지정한 이유로 건강한 생태계와 함께 아름다운 경관, 오래된 사찰, 산 중턱의 큰 대밭 등을 꼽았으면 현대 들어서 새롭게 명산으로 자리매김해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연화산 등산로는 크게 4개 코스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도립공원주차장과 옥천사를 많이 이용한다.
▲도립공원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매봉~느재고개~싸리재~연화산 정상~운암고개~남산~황새고개~장군봉을 거쳐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는 총 7.2km 거리에 4시간 남짓 소요된다.
▲역시 도립공원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매봉~느재고개~싸리재~연화산 정상~운암고개~남산~황새고개를 거쳐 청련암으로 빠져 옥천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도 있다. 총 7km에 4시간 정도 소요.
▲옥천 소류지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옥천소류지를 지나 옥천사~백련암~매봉~느재고개~운암고개~남산~꽃무릇군락~청련암을 거쳐 다시 옥천소류지로 원점회귀한다. 이 코스는 총 5km에 2시간 30분 정도 소요.
▲편백숲이 있는 느재고개에서 산림욕을 즐긴 뒤 출발하는 코스도 있다. 느재고개에서 싸리재~시루봉전망대를 갔다가 다시 싸리재로 내려와서 적멸보궁~연화산정상~운암고개를 거쳐 느재고개로 원점회귀한다. 총 4km에 2시간가량 소요. ▲옥천사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백련암~연화산 정상을 거쳐 황새고개로 내려와 원점회귀할 수 있고, 청련암을 거쳐 남산~연화산 정상을 지나 황새고개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도 있다. 두 코스 모두 5km 내외에 2시간 남짓 소요.
19세기 발간된 <대동여지도>에는 연화산이 명확히 표시돼 있다.
18세기 중엽 제작된 산의 족보인 <산경표>에는 낙남정맥 줄기로 무량산이 등장한다.
일제가 한반도 지명을 정리한 <조선지지자료>에도 연화산 옥천사가 나온다.
연화산 정상에 비석과 돌탑이 있다. 주변 조망은 숲이 우거져 제대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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