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자유등반과 흰 산의 꿈을 키웠던 잠룡들의 훈련장
와룡산 상사바위
상사바위 중앙벽의 우정길 등반을 마치고 하강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등반가들이 와룡산에서 흰 구름을 보며 흰산 등반 꿈을 키웠다.
어린 담쟁이
-양말장사(이덕용)
어린 담쟁이는
직벽을 바라보며 엄숙해진다
저 벽을 어떻게 오를까
저 높은 벽을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줄기 끝을 위로 뻗어본다
발끝 불끈 힘 모아 올려본다
그냥 매달려서는 안 된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몸 균형을 잡아줘야 된다
어린 담쟁인 쫄지 않는다
쫄아서는 오를 수 없다
담쟁이 이파리는
줄기 뻗어 물을 빨아
들불처럼 잎사귀를 늘린다
다닥다닥 붙은 수북한 이파리
햇빛 받아 화려한 갑옷 입다
불어오는 바람 고명 삼아
빛나는 윤슬 담아 찰랑거린다
담쟁이 이파리는
그렇게 잎 달고 직벽을 오른다
쫄지 않고 그렇게 오른다
중앙벽 비룡b길 1피치 등반을 마치고 다음 피치 등반을 위해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진다. 히말라야 고산등반 훈련을 위한 기합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중화를 신고 로프에 매달려 등강기에 의지한 채 팔뚝이 터져라 오르고 또 오른다. 다른 곳에서는 슬랩에서 발을 바들바들 떨며 오르고 있다.
경남 사천 와룡산 상사바위는 지난 수십 년간 흰 산의 꿈을 가진 이들이 북적이며 꿈을 키우던 곳이다. 특히 이곳 서부 경남은 뛰어난 고산등반가뿐만 아니라 자유등반에도 출중한 등반가들이 즐비했다.
1980~199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자유등반지가 개척되었다. 와룡산 상사바위는 진주 초모롱마 산악회가 처음 개척에 나섰고, 이후 여러 산악회가 개척에 참여하면서 경남의 대표적인 암장으로 거듭났다. 경남의 자유등반지로 손꼽혀 등반가들로 붐볐으며, 히말라야 고산등반 훈련 대상지로도 적합해 고산등반가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발홀드를 신중하게 찾고 있는 노상봉씨.
와룡산 상사바위는 크게 4개의 암장(상사정상벽, 상사직벽, 상사중앙벽, 상사슬랩)으로 구분된다. 총 36개의 루트가 개척되었고, 서부 경남의 유일한 대형 암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과거 북적대던 암장은 오늘 아주 고요하다. 마치 옛 영광을 품고 은퇴한 스타플레이어처럼 상사바위는 저 멀리 잔잔한 다도해를 관망하고 있다.
오후 6시를 넘긴 시간, 붉은 해는 벌써 뒤로 넘어가고 푸른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위에서 딸그락 거리는 쇳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등반 장비가 부딪히는 소리다. 등반 중이다. 저 멀리 3명의 등반가가 벽에 붙어 있다. 정상 직전의 벽이다. 4피치이며 등반길이만 90여 m에 이르는 정상길을 등반 중이다. 등반
‘등반에 대한 열정일까? 아니면 재미있어서 열정이 생기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부지런함과 엄격하게 스스로의 육체를 단련시키는 행위, 그리고 순수한 열정에 박수를 치게 되었다.
상사바위 북벽 정상길을 등반 중인 공영효씨. 아침 햇살이 등반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2시간쯤 지나자 등반을 마치고 숨을 헐떡이며 빠른 걸음으로 그들이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내일 등반 촬영할 로프 다 깔아 놨습니다. 그러면 내일 좀더 수월하겠지요?”
내일 촬영을 위해 미리 로프를 깔아 놓다니, 등반사진을 찍는 입장에선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진주SKY클라이밍 센터장 김규철(부산빅월클럽)씨가 “그 대신 내일 일출 등반은 어때요?”라며 씨익 웃으며 물어 온다. 잠시 망설이다가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아침 일찍 침낭을 뚫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아침 분위기는 상쾌하지만 몸이 깨어나려면 좀 이른 시간이라 괜한 걱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랜턴 주변에 둘러 앉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재개그의 달인으로 꼽히는 노상봉(진주SKY클라이밍)씨가 야영 분위기를 한층 즐겁게 달궈 주었다.
상사바위 앞으로 삼천포항과 저 멀리 수우도와 사량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벽의 우정길을 등반 중인 이덕용씨.
“인자 양말장사 끝났습니더!”
다음날 이른 아침, 따뜻한 차를 마시고 정상벽으로 향한다. 4피치의 상사길과 정상길을 두 팀으로 나누어서 붙었다. 상사길은 공영효(부산빅월클럽)씨가 줄을 묵었다. 1990년대 등반을 시작해 지금까지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공씨는 “등반이 몸과 마음을 가꾸는 데 최고”라고 말한다. 또한 “몸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배려”라고 강조한다.
이번 등반팀에는 홍일점인 안소영(진주SKY클라이밍)씨가 함께했다. 클라이밍센터에서 운동을 접하면서 등반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되었다는 안소영씨는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마다 등반을 즐긴다고 한다.
힘들게 등반을 마친 안소영씨 뒤로 김규철 센터장이 흐뭇하게 웃고 있다.
정상길 3~4피치 구간은 직벽에 가까운 경사로 크랙 구간이다. 레이백 동작을 해야 하는 바윗길이 있어 손과 발의 밸런스와 파워가 요구되는 구간이지만 초보답지 않게 안소영씨는 끙끙거리면서도 등반을 잘 이어간다. 마지막 4피치 등반이 끝나자 상사바위 정상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선 와룡산 등산로와도 만나게 된다. 아침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하강해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등반을 마쳤는데 아침 9시도 안 되었네요. 하하!”
다들 상쾌한 아침이라고 입을 모은다. 식사 후 다시 벽에 붙는다. 중앙벽의 우정길과 비룡b길로 등반을 이어 간다. 등반에 참여한 진주SKY클라이밍센터 이덕용(진주클라이밍클럽)씨는 담쟁이를 등반가에 비유한 시를 쓴 주인공이다.
중앙벽 비룡b길 1피치 구간을 등반 중인 안소영씨.
필자와 함께 등강기로 벽을 오른 이덕용씨는 2017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의 최고봉 레닌봉(7,134m) 등정 후 하산하다 사고를 당했다. 악천후를 만나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렸고 이로 인해 손가락 몇 마디를 내놓았다. 자유등반은 제한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벽을 오른다. 그는 “산이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법”이라며, 지금도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로프를 묶는다.
전직 영어교사인 이덕용씨는 얼마 전 명예퇴직 후 지금은 등반에 몰두하고 있다. 평생 영어를 가르친 그는 시집을 낼 정도로 시를 많이 썼다. 그의 인터넷 닉네임은 ‘양말장사’이다. 그는 “얼마 전 명예퇴직 했다”며 “이제 양말장사 끝났다”고 웃으며 말한다. ‘서양 말’을 가르치는 역할을 그만 두었다는 뜻인 걸 알고, 무릎을 치며 웃었다.
상사바위 정상에 선 등반가들.
와룡산 상사바위
상사바위는 폭 180m, 높이 100m의 대형 암장이다. 동북쪽의 정상벽, 남서쪽의 상사직벽·중앙벽·좌우 슬랩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상벽에는 15개, 상사직벽은 7개, 중앙벽은 6개, 슬랩은 4개 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진주 초모롱마산악회가 개척하고 여러 산악회가 개척해 경남의 대표적인 암장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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