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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낭만야영 : 창원 천주산] 핑크빛 쓰나미!

by 白馬 2021. 5. 12.

진달래 명산에서의 하룻밤 야간산행과 일출 사진족 밤새도록 야영지 들락날락

 

천주산 동쪽 쉼터에서 바라 본 풍경. 강렬한 오후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가 핑크빛 물결로 천주산을 뒤덮고 있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릴 때 떠오르는 곳이 천주산이다. 경남 창원시와 함안군을 아우르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의 천주산天柱山(638.8m)은 진달래 명산이다. 봄나들이를 흥정하듯 정상부에 진한 분홍빛 진달래를 흐드러지게 펼쳐놓고, 벚꽃에 취해 있던 상춘객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매년 인연이 없던 천주산 진달래의 절정을 보기 위해, 특별히 평일에 휴가를 냈다. 이른 아침 창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SNS에 올라온 천주산 진달래를 보고 있자니, 행여 진달래가 다 떨어진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달천계곡 주차장에 들어서기도 전,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놀랐다.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평일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천주산을 찾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주차할 자리가 있을까 걱정스러웠으나, 마침 빠지는 차가 있어 운 좋게 주차를 했다. 곧장 배낭을 들쳐 메고, 잘 정비된 숲길로 들어섰다.

 

봄소식을 알리며 최선을 다해 피었을 벚꽃 잎이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연분홍 벚꽃잎이 등산로를 가득 메웠다. 최근 주말마다 궂은 날씨였던 탓에 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는데,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달천계곡 코스로 중간쯤 오르면 땀을 식히며 창원시내와 진달래로 뒤덮인 천주산 정상을 조망할 수 있다.

 

꽃길을 벗어나자 급작스레 나타난 된비알에 당황했다. 꽃샘추위에 쌀쌀했던 서울 날씨를 생각해서 옷을 두껍게 입은 탓에 더위와 사투를 벌일 판이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겹겹이 챙겨 입은 옷을 벗었다. 더위가 식고, 걷기가 수월해지니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초록이 눈에 들어왔다. 바쁜 일상에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봄 패키지를 누릴 수 있었다.

 

코스의 반쯤 올랐을 때, 멀리 천주산 용지봉龍池峰에 가득한 진달래를 발견했다. 반대쪽에서 산을 타고 넘어오는 핑크빛 운해가 산자락으로 서서히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저 많은 진달래가 어떻게 저 높은 곳에 자리했을까? 등산로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진달래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에 분홍빛 샤워를 하고 있는 진달래 숲길. 진달래 터널을 걷노라면 배낭 무거운 줄 모르고 신바람 난 어깨가 들썩거린다.

 

진달래 황홀경의 습격

만남의 광장을 지나 데크 계단을 따라 진달래 군락지에 들어섰다. 평일임에도 등산 인파로 시끌벅적했다. 삼삼오오 모여 진달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파른 계단임에도 분홍 꽃에 홀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른 듯 쉽게 정상에 다다랐다.

 

눈앞에 펼쳐진 진달래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웅장했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분홍 꽃은 사람들을 보고 까르르 웃으며 수줍게 속삭이는 듯했다. 진달래로 뒤덮인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진달래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인터넷에서 보고 야영 장소로 점 찍어둔 한적해 보였던 작은 데크는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자연 꽃밭이라면 어디서 하룻밤을 보낸들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넓은 데크 한켠에 배낭을 내려놓고, 전망을 보았다. 서풍에 진달래가 하늘거리고, 등 뒤에서 덮쳐오는 거대한 핑크빛 쓰나미가 시내까지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어느덧 파란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자, 곱디고운 진달래 머리 위로 아스라이 노란빛이 내려앉았다. 해가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일렁이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화려한 빛을 발하며 재잘대던 진달래는 수줍은 아이마냥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일 등산객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이따금씩 랜턴을 켠 사람들이 지나갔다. 다음날 멋진 일출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올라올 등산객들을 위해 경치 좋은 난간에서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지만, 어차피 인기척에 잠이 깰 것이었다.

어둠이 내린 뒤에도 퇴근 후 텐트만 지고 올라오는 백패커가 있었다. 산정에서 먹고 마시는 데 집중하는 백패커들도 있지만, 이맘때 천주산을 찾는 백패커는 조금 다르다. 오롯이 달빛에 빛나는 진달래 화원에서 하룻밤 보내는 낭만을 위해 오르는 것이다. 풍류를 즐기겠다며 지고 올라온 맥주가 부끄러웠다. 게 눈 감추듯 맥주를 들이켜고, 식사 자리를 가볍게 정리했다.

잠들기 전 야경을 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동쪽 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 때문에 별은 볼 수 없었지만, 어슴푸레 빛나는 진달래 덕분에 야경이 한층 더 아름다웠다. 텐트 안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늦은 시간까지 야간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커지는 그들의 발소리에 바쁜 일상을 핑계로 어느새 시들해진 나의 산행 열정이 아쉽게 느껴졌다.

 

창원 시내가 불야성을 이룬 천주산의 밤. 달빛에 하나둘 깨어난 진달래가 소곤대는 듯하다.

 

끊임없는 야간 산행객과 일출 사진가

짙은 어둠 속에서 나무 데크를 둔탁하게 울리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다. 한 명 아니 두 명. 터벅터벅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가느다란 랜턴 불빛이 어지럽게 텐트를 할퀴고 있었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대화소리, 예민한 구조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데크의 주인이 바뀔 차례였다.

 

잠에서 깨지 않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두 개의 헤드랜턴이 거칠게 눈을 스쳤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인사를 건네고, 텐트를 통째 뒤쪽 구석으로 옮겼다. 멋진 일출을 담기 위해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부지런한 사진작가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에 질세라 재빨리 카메라를 찾아 난간에 설치했다. 텐트를 정리하는 사이, 난간은 카메라로 빼곡했다. 여명이 밝아오기 전부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박자를 맞추며 연신 울렸다.

 

텐트를 접고 카메라 뒤에 서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서서히 노랗게 물들자 어둠 속에서 움츠리고 있던 진달래가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적 속에서 자동으로 터지는 셔터 소리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능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자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온갖 미사여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에 밝은 빛이 퍼지자, 순식간에 난간 너머로 핑크빛 파도가 밀려왔다. 석양의 진달래와는 달리 더욱 진한 색감을 드러냈다. 최근 들어 나의 눈동자에 맺히는 가장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눈이 부실 때까지 한참동안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누군가 “이제 출근하러 가자”고 말했고,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도 이틀 동안 밀린 일을 하러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지. 핑크빛 황홀경을 간직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간신히 떼어내며 진달래 군락지를 벗어났다. 무리해서 평일 백패킹을 강행한 보람이 있었다.

 

천주산 산행정보

◎ 천주산 진달래 산행은 매년 만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2021년 기준 3월 27일에서 4월 4일 사이가 적기였다.

◎ 진달래 시즌에 일출·일몰 산행 시, 일교차가 심하므로 산행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 달천계곡 주차장~만남의 광장~헬기장~ 천주산 정상~원점회귀 <3시간 소요>

◎ 천주암~천주암 갈림길~천주암 약수터~만남의 광장~헬기장~천주산 정상~원점회귀 <2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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