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진미… 대게잡이 체험
① 그물에 엉킨 대게를 떼어내는 작업은 고되면서 세심함까지 요구했다. 어른 수컷 대게는 제값 받을 수 있도록 다리 하나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야 했고, 판매할 수 없는 암컷·어린 대게는 모두 떼어내 바다로 돌려보내야 했다. ② 대게는 크기보다 살이 꽉 차서 무거운 놈으로 골라야 한다. ③ 영덕에서 ‘오방다릿살’이라 부르는 집게발 살. 다릿살보다 결이 굵고 씹는 맛이 있다.
경북 영덕에서 25마일(약 40㎞) 떨어진 동해 바다에 정박한 대게잡이배 '대경호'는 쉬지 않고 전후좌우로 흔들렸다. 추위는 각오했지만 뱃멀미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평생 차멀미 한번 해보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약도 미리 먹었건만 소용없었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서 있기도 버거웠다. '대게의 고장' 영덕에서도 이름난 30년 경력 대게잡이 윤정군(60) 대경호 선장은 "날도 맑고 파도도 잔잔한 편"이라며 "이만하면 작업하기 좋은 날"이라 했다.
바다에선 뱃멀미, 돌아와선 땅 멀미
겨울 바다를 대표하는 진미(珍味) 대게를 어떻게 잡는지 알아보려고 영덕을 찾아갔다. 대경호 출항 예정 시각은 4일 새벽 3시. 윤 선장을 소개해준 영덕군청 조현국 과장은 "바다 나가면 무지 추우니 준비 단디 하고 오시라"고 조언했다. 발열내복에 또 다른 내복을 겹쳐 입고 그 위에 스웨터, 다운파카, 작업복 등 다섯 겹을 껴입었다. 문제는 바람. 윤 선장은 "바람이 거세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자"며 4시간 30분을 미뤘다. 동해 너머에서 해가 떠오른 7시 30분, 윤 선장은 출항을 지시했다.
영덕 축산항을 출발한 대경호가 2시간 30분쯤 동북 방향으로 달렸을 때, 윤 선장이 엔진을 껐다. '대경'이라고 적힌 흰색 부표가 배 오른편에 둥둥 떠 있었다. 윤 선장은 "한 달 전 그물을 내려둔 곳"이라고 했다. 선원들이 갈고리로 부표를 끌어당겼다. 부표에 달린 밧줄을 뱃머리에 고정된 양망기(揚網機)에 걸고 스위치를 눌렀다. 천천히 돌아가는 양망기는 바다 밑바닥에 쳐놓았던 그물을 감아 올렸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대게가 그물에 걸려 줄줄이 올라왔다. 예상과 달리 윤 선장과 선원들 얼굴이 밝지 않았다. "'빵게'하고 '체장 미달'만 많아 그렇지요." 대게 개체수 유지를 위해 정부는 포획금지기간(매년 6월 1일~11월 30일) 외에도 여러 조치를 마련했다. 통통하고 동그란 모양과 크기가 딱 찐빵 같다고 해서 '빵게'라고 부르는 암컷 대게는 연중 내내 잡아서도 판매해서도 안 된다. 체장(대게 몸통의 세로 길이) 9㎝가 안 되는 '체장 미달', 즉 어린 대게도 마찬가지. 대게가 체장 9㎝로 자라려면 평균 8년이 걸린다고 한다. 팔지도 못하고 도로 바다로 돌려보내야 하는 암컷·어린 대게만 걸려 올라오니, 유 선장과 선원들이 기분 좋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대게를 그물에서 떼는 작업은 힘들고, 귀찮고, 오래 걸리면서 섬세함까지 요구했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그물에 엉켜있는 어른 수컷 대게는 다리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그물을 벗겨내야 했다. 다리 하나라도 떨어지면 애써 잡은 대게 가격이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빵게와 체장 미달도 남김없이 그물에서 떼어 배 밖으로 던졌다. 그나마 꽃게와 달리 집게발로 물거나 도망치려고 난리 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초반에는 암컷과 체장 미달이 많았지만, 뒤로 가면서 어른 수컷 대게가 차츰 올라왔다. 오전 10시 시작된 작업은 6시간 만인 오후 4시 완료했다. 선원 한 명이 떨어진 대게 다리 몇 개 토막 내서 넣고 끓인 라면을 찬밥과 함께 내왔다. 특유의 감칠맛과 향기가 진하게 배어든 '대게 라면'은 일품이었다. 출항 직전 아침 먹고 9시간 동안 '공복'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윤 선장은 배 뒤에 실어온 새 그물을 선원들과 함께 설치하고는 뱃머리를 돌렸다. 귀항 시각은 오후 7시. 선창에 올라서자 몸이 휘청했다. 땅이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윤 선장은 "그게 우리 뱃사람들이 말하는 '땅 멀미'"라며 웃었다.
대게 버금간다 너도대게
이날 대경호가 잡은 300여 마리에는 대게와 '너도대게'가 섞여있었다. 너도대게란 이름을 과거 영덕에선 '너도 대게냐?'의 줄임말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래, 너도 대게로구나'라고 할 만큼 인식이 개선됐다. 포획량이 줄어든 대게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다. 동해에서 잡히는 대게는 대게와 너도대게, 붉은대게(홍게) 등이 있다. 너도대게는 대게와 붉은대게의 자연 교잡종으로 추정된다. 맛도 생김새도 대게와 붉은대게를 섞어놓은 듯하다〈표 참조〉. 붉은대게는 맛이 떨어져 대부분 가공용으로 수출된다.
윤 선장의 아내 장정분씨가 "대게만큼은 아니지만 맛이 상당히 괜찮다"며 잡아온 대게와 너도대게 몇 마리를 골라냈다. "대게는 크기보다 살이 얼마나 꽉 찼느냐가 중요해요. 큰 대게라도 '물렁게(물게)'는 4~5배 낮게 거래되지요. 무거울수록 좋아요. 배 부분이 검거나, 눌러봤을 때 말랑하면 맛없어요. 다리는 몸에 비해 가늘고 길면서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걸 고르세요. 게 뚜껑에 붙은 검은 게딱지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대게와 공생관계인데, 대게에 게딱지가 붙었으면 맛이 좋다는 증거지요." 윤 선장은 "보름 때 맛이 떨어지고 살이 빠지는 꽃게와 달리 대게는 일정하다"고 말을 보탰다.
매일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는 마리당 1만5000~2만원 한다. 너도대게는 이보다 5000원가량 저렴하다. 장씨는 "1인당 5만원 정도면 배불리 먹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영덕 강구항과 축산항에 몰려있는 대게 식당 대부분은 대개를 택배로 부쳐주기도 한다. 식당 위치·전화번호 등 정보는 영덕관광포털에서 확인 가능하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파는 대게는 거의 전부 러시아산이고 국내산은 찾기 힘들다.
장씨는 "대게는 찌기 전 죽어있어야 한다. 산 대게를 그대로 찌면 몸을 비틀면서 다리가 떨어지고 몸통 속 게장이 쏟아진다"고 했다. 마침 대게를 사러 경기도 평택에서 온 손님이 "살아있는 대게를 달라"고 했다. 장씨는 "이 큰 대게를 집에서 제대로 찌기 쉽지 않다"며 "대게는 전화 주문해도 반드시 쪄서 보낸다"고 했다.
장씨는 대게와 너도대게를 배가 위로 향하도록 찜기에 넣었다. 뜨거운 김이 들어가도 게장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간에 뚜껑을 열면 게장이 다리로 흘러들어 다릿살이 검게 변하니 완전히 쪄질 때까지 뚜껑을 절대 열면 안 돼요."
20분쯤 지나 잘 쪄진 대게와 너도대게가 상에 나왔다. 구분이 힘들지만 대게는 등이 주황색이고 배가 흰색인 반면, 너도대게는 등은 진홍색이고 배는 연홍색으로 전체적으로 더 진한 붉은빛이다. 맛도 비슷하다. 대게가 조금 더 묵직한 감칠맛이라면, 너도대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단맛이랄까.
장씨가 대나무처럼 길고 곧은 다리를 뚝 잘라 껍데기를 한두 번 누른 뒤 당기니 통통한 다릿살이 쏙 빠져나왔다. 영덕에서 "오방다릿살"이라 부른다는 집게발 살은 결이 굵고 오독오독 더 탄력 있게 씹혔다. 게딱지를 열어 발라낸 몸통살은 가장 결이 곱고 섬세했다. 게장은 대게 특유의 감칠맛이 비리다 할 정도로 진했다. 등딱지에 남은 게장에 참기름, 김가루와 함께 밥을 비벼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바다에 나가 '게 고생'해 잡아올 만하다는 생각이 포만감과 함께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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