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쓸쓸하고 심심해진 골목 산책, 보물찾기 같은 옛 풍경이 그리워 경복궁 서쪽 동네인 서촌을 찾았다. 좁고 호젓한 골목길엔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고, 60년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서점의 옛 모습과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문방구가 반갑다. 동네 풍경만큼 구수한 단호박피자집과 남도의 맛을 내는 분식집, 빵집다운 빵집과 따뜻한 커피집이 보석처럼 숨어 있는 곳, 서촌 옥인길에서 바삭바삭하고 달콤한 추억의 하루를 만났다.
서촌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통인시장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지나간다. 통인시장과 함께 서촌을 알리는 데 일조한 옛 금천교시장이다. 서촌을 향해 타박타박 10여 분쯤 걷다 보면 통인시장이 나온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09번 마을버스를 타고 옥인길에서 내리는 빠른 방법도 있지만 서촌에서는 걷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비교적 옛 시장의 소박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통인시장은 기름떡볶이와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로 이름을 떨쳐 멀리서 온 손님들로 늘 북적거린다.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시장의 맛있는 유혹을 뿌리치며 걷다 보면 시장 끝 정자에 다다른다. 정자에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6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지켜온 대오서점이 있는데, 운영은 힘들고 찾는 사람은 많아져 그새 찻집으로 바뀌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매력적인 서촌 골목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자 맞은편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촌의 여러 갈래 길 중에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남도분식과 옥인피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촌 골목, 옥인길을 만난다. 옥인길 골목에는 서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다.
알면 알수록, 걸으면 걸을수록 느림의 미덕에 빠지게 되는 서촌 골목 여행,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도심 속이라 더 매력적이다.
조금 느리지만 건강하게, 옥인피자
옥인피자는 서촌에서 꽤 유명한 피자집이다. 입소문을 탄 덕분에 작은 골목 안에 있어도 늘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전통 한옥의 모양은 그대로 남기고 실내만 현대식으로 꾸며 편안하고 아름답다. 원래는 신혼부부가 살림집과 피자집을 겸해서 오픈했다가 지금은 피자집으로만 운영하는데, 신혼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주인장의 행복한 미소가 여전히 기분 좋다. 메뉴는 피자와 샐러드뿐. 얇게 민 피자 도우를 2장 겹쳐서 바삭하게 구워내고, 도우 속에 다양한 소스를 넣어 굽는 방식이 특별하다.
옥인피자의 대표 메뉴는 단호박치즈피자. 싱싱한 단호박으로 만든 소스에 4가지 치즈를 첨가했다. 단호박소스가 탈까봐 피자 도우를 하나 더 위에 덮는 방식으로 굽는데, 소스와 치즈가 부드럽게 어우러져 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직접 반죽해서 저온 숙성한 피자 도우는 바삭하고, 속에 넣은 단호박소스는 부드럽고 달콤하게 입안을 적신다.
달콤한 단호박 퓌레와 치즈가 들어 있는 단호박피자
달콤한 단호박피자를 즐기고 나서 세트 메뉴에 함께 나온 샐러드를 얹어 먹으면 상큼한 맛으로 두 가지 피자를 즐길 수 있다.
단호박피자는 샐러드를 얹으면 상큼하다
단호박치즈피자 외에도 알프레도 머시룸 피자와 포테이토 피자도 인기 메뉴다. 홈메이드 리코타치즈 샐러드는 매일 직접 만든 신선한 리코타치즈와 올리브 향 풍부한 발사믹 드레싱이 상큼해서 피자와 함께 먹으면 눈과 입이 즐겁다.
단호박피자는 식후 디저트로 먹어도 좋을 만큼 달콤하다
영업시간 주중 11:30~21:00(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주말 11:30~21:00(15:00~15:30 브레이크 타임), 매주 일요일 휴무.
포테이토 피자와 토마토 머시룸 피자도 인기 메뉴다
향토음식을 캐주얼하고 맛있게, 남도분식
남도분식의 대표 메뉴는 오순떡과 상추튀김, 김밥쌈이다. 하나같이 재미있고 신선한 맛이다. 상추를 튀겨내는 걸로 예상했던 상추튀김은 상추에 싸먹는 오징어튀김이고, 오순떡은 즉석 떡볶이에 오징어순대가 들어 있다. 상추튀김은 전라도의 분식 메뉴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라는데, 짭조름하게 절인 양파고추피클과 바삭하고 통통한 오징어튀김을 싱싱한 상추와 깻잎에 싸먹는 맛이 신선하고 개운하다.
오징어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맛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오징어에 파스타와 치즈를 넣어 통통하게 익혀 먹던 원조 오순떡은 속초에서 공수해온 진짜 오징어순대를 넣은 오순떡 신상 메뉴로 업그레이드했다. 쫀득한 쌀떡과 사리를 건져 먹다가 매콤하게 졸여진 오징어순대에 아삭한 숙주를 얹어 먹는다. 칼칼하게 매운 떡볶이 양념이 바특하게 졸아들면 삶은 달걀과 군만두를 추가해 먹고 마지막에 볶음밥까지 알차게 먹는다. 남도분식은 영업을 시작하는 11시 30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기 때문에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브레이크 타임에 예약해놓고 서촌을 천천히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도 골목을 즐기는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