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생활

천천히 졸이듯 만드는 쌀 요리 리소토 자애롭고 푸근하게 허기를 채워주네

by 白馬 2019. 9. 20.

리소토 식당 편

서울 상수동 '브렛피자'

천천히 졸이듯 만드는 쌀 요리 리소토
자애롭고 푸근하게 허기를 채워주네

밀라노 리나테 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을 때 멀리 논이 보였다. 그리고 밀라노는 새콤한 토마토 향이 아닌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거리에 밴 것 같았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쌀 생산량이 제일 많은 나라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는 리소토(risotto)의 고향이다.

토마토를 중심으로 태양의 힘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옮긴 듯한 남부의 식문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생각하는 이탈리아 음식 문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푸근한 향을 이끌어내며 졸이듯 끓여낸 리소토 역시 이탈리아 문화의 커다란 부분 중 하나다. 올리브유와 토마토의 푸릇한 향이 아닌, 뭉근하게 몸을 데우며 허기를 차분히 채우는 쌀의 또 다른 맛이 리소토에 있다.

브렛피자의 리소토 산타마리아(앞)와 마르게리타 피자.
브렛피자의 리소토 산타마리아(앞)와 마르게리타 피자.
파스타만큼이나 리소토에도 이탈리아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규칙이 많다. 쌀알 역시 파스타처럼 알덴테(al dente) 상태로 익혀야 한다. 파스타처럼 흰 심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쌀알 표면이 저항감을 가지고 이에 씹힐 정도의 탄성이 있어야 한다는 감각적 기준이다.

만드는 것 역시 쌀알을 볶아 고소한 맛을 이끌어 내고 육수를 몇 번 나눠 부어 익히며 계속 저어주는 헌신적이고 종교적인 조리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리소토는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질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리소토는 평평한 접시에 내는 게 전통이다. 움푹한 대접 같은 그릇에 리소토가 나오면 일단 제쳐두어도 좋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이탈리아 요리사를 찾아 "그럼 나에게 제대로 된 리소토를 줘" 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이태원 '일키아쏘(Il Chiasso)'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이곳은 낮은 천장과 어둑한 노란 조명,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이뤄진 실내 장식까지 모두 이탈리아 현지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말로 주문을 받으며 불 앞에 선 요리사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목소리가 제일 큰 주방장은 웃음이 많고 눈썹이 짙은 이탈리아 남자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잘라내는 프로슈토 햄은 과일처럼 상쾌한 맛을 낸다. 몸에 딱 맞는 이탈리아산 양복처럼 빗나가는 부분 하나 없이 간과 산미가 정확하게 잡힌 해산물 파스타도 추천 메뉴다.

서울 상수동 '브렛피자'
하지만 자동차 타이어만 한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Reggiano) 치즈를 반으로 자르고 속을 움푹 파낸 뒤 그 속에 리소토를 넣어 '비벼' 내주는 '파르미자노 리소토'는 이 식당의 정수다. 테이블 바로 앞에서 리소토를 만드는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머리 끝까지 치솟는 치즈의 감칠맛, 저항감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쌀알까지 이탈리아 사람이 제대로 만든 이탈리아 요리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

이태원에서 상수동 '브렛피자'로 자리를 옮기면 한국인이,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땀 흘려 만든 리소토를 먹을 수 있다. 피자를 내세운 상호만큼이나 피자로는 한국에서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백과사전에 실릴 만큼 정확한 모양새의 마르게리타 피자도 좋지만 치즈와 대파를 올려 구운 '에푸아스' 피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기에 한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노릿한 치즈의 풍미, 대파의 단맛, 바삭하고 구수한 피자 도우의 만남은 나직한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내성적이지만 풍성하고 조화롭다.

이 식당의 리소토는 성가가 울려 퍼지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마무리를 책임진다. 산타마리아(Santamaria)라는 요리사의 이름을 딴 이 집 리소토는 홍합과 사프란을 써 맛을 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노란색에 눈이 부시다. 스페인 파에야처럼 건더기가 많거나 구운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대신 화려하고 우아한 질감과 감각을 다그치지 않는 고유한 향기가 자애롭게 오감을 어루만진다. '리소토란 이런 것이야'라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