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마다 특색있는 금강송이 반겨주는 숲길 트레킹, 등짐 지고 다녔을 보부상들 생각에 눈물 찔끔
by 白馬2019. 6. 6.
경북 울진군
세상에 혼자인 날들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에 지쳐 있다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로 가보자. 오지 중의 오지인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은 금강소나무들을 따라 걷다보면 복잡했던 머리며 마음이 깨끗해진다. 보부상과 화전민들의 치열하고 척박한 삶은 '살아가는 힘'을 불러일으킨다.
울진의 금강송은 신비롭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자리한 덕분에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에도 살아남았다. 이후에도 1000만 그루가 넘는 금강소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민간인 출입을 금했고, 지난 2006년 '에코투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
사전 예약 필수, 숲해설사와 함께 걸어요!
지금도 울진 금강소나무숲을 걸으려면 예약은 필수다. 총 5개의 구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최대 80명으로 인원 제한을 한다. 탐방객들은 숲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탐방예약은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komount.kr/forest_trail/ggs.jsp 에서 가능하다. 걷기 좋은 봄이나 가을에는 적어도 보름 전에는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와 코스를 맞출 수 있다. 최대 3일전까지 예약 가능하다. 매주 화요일은 쉰다.
20명 이상의 단체 예약만 가능한 2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이 걸을 수 있다. 오늘은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한 소광리 금강송 숲을 둘러볼 수 있는 3구간을 걷기로 했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 3구간 시작점 금강송펜션과 십이령주막
왕복 16.3km에 달하는 3구간은 소광2리(금강송펜션)에서 출발해 저진터재~너심밭을 지나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와 500년 소나무를 보고 원점회귀 하는 코스다. 앞서 소개했듯 소광리가 품은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일제강점기의 수탈에도 살아남은 만큼 깊은 산자락에 자리한 오지 중의 오지. 지금도 울진읍에서 소광리로 들어서는 버스는 하루 2대(08:05, 15:20) 뿐이다. 첫차를 타고 소광리로 들어와 걷거나 막차를 타고 들어와 하루 묵고 다음날 걸어야 한다.
하루 2번 울진읍에서 버스가 들어온다
화전민과 보부상들의 흔적 구석구석
출발지인 금강송펜션(십이령주막)에서 9시 출발 예정. 지난밤 빗줄기가 아직 남아있다. 먼저 도착한 탐방객들은 십이령주막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도 한다. 금강소나무숲길 트레킹에는 따로 요금은 없다. 다만 트레킹 중간 점심식사를 하려면 7000원의 식대를 내야한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건강한 식단이 준비되어 있다.
금강소나무 숲길 트레킹
트레킹 시작 전, 숲해설사의 간단한 설명과 스트레칭이 진행된다. 거대한 몸으로 7시간 짜리 트레킹이 가능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등산화와 간식을 믿을 뿐이다. 마을 뒤로 오르면 시멘트길이 시작되지만 어느새 보드라운 흙길로 바뀐다. 앞뒤로 항상 땅이 젖어 있어 '저진터재'라 이름 붙었다는 첫 번째 고개에 올랐다.
동행하는 숲해설
사의 설명이 중간중간 더해진다
마르지도 않은 이 흙길을 그 옛날 보부상들은 산더미 같은 등짐을 짊어지고 건넜으리라,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울진에서 나는 해산물을 이 길을 통해 봉화로, 또 봉화에서 농산물을 들고 울진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으리라. 여기 이곳의 소나무들이 그들의 눈물 섞인 땀방울을 먹고 자라지는 않았을까.
화전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저진터
저진터재를 지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음지로 들어서자 속새 군락지가 맞아준다. 얇은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약재로도 쓰이고 사포가 없던 시절 나무면을 갈아내는 용도로도 썼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 트레킹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숲해설사와 맞춰 걷는 편이 좋다. 숲이 품은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화전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저진터
물줄기 위 징검다리를 지나자 화전민터에 닿았다. 앞서 소개한 저진터재의 '저진터'에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다. 주인 잃은 디딜방아와 곡식 저장고 등이 날것 그 상태로 자리를 지킨다. 잠시 후 다시 시작된 오르막, 너삼밭재다. 너삼밭재 표지판 뒤로 오르막길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삼이라고도 하는 너삼은 약재로도 쓰였어요.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 오르막 위에 약방이 있었다고 해요. 보부상들이 오가며 약재를 사고 팔고 했던 게지요."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속새
소광천 물줄기 따라 오백년 넘은 금강소나무 만나러 가는 길
깊은 숲길을 지나 임도로 나오자 물줄기가 반겨준다. 소광천이다.
계곡을 건널 때는 도움이 필수!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숲해설사가 동행한다. 어제 내린 비로 물줄기가 불어 위험한 곳은 임도로 우회하며 이동한다.
솔방울과 닮은 잣방울
물줄기와 숲길, 임도를 오가며 오백년 소나무에 가까워진다.
잣방울을 털어내면 잣알이 나온다
금강소나무숲길 트레킹의 묘미는 금강소나무는 물론, 계절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긴 건 예쁘지만 사약 중의 사약으로 알려진 투구꽃
천천히 걷다보면 가을을 알리는 알밤과 잣을 비롯해 예쁜 생김새와는 달리 사약중의 사약이라는 투구꽃,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등 가을 국화꽃도 가득하다.
국화과인 벌개미취와 쑥부쟁이
드디어, 마지막 물줄기를 건너자 금강소나무 군락지 안내소에 닿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다. 이미 기다리던 밥차에서 각자 먹을 만큼 담아 먹으면 된다. 쌀밥과 나물, 김치, 순두부 등 건강식이다. 식사 후 잠시 쉬었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돌아본다. 처음 오픈했을 때에는 500년 된 소나무를 지나 못난이 소나무와 미인송까지 볼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500년 소나무까지만 걸을 수 있다.
소나무의 政府가 어디 있을까? / 소나무의 궁궐이 어디 있을까? / 묻지 말고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로 가자 / 아침에 한 나무가 일어서서 하늘을 떠받치면 / 또 한 나무가 일어서고 그러면 / 또 한 나무가 따라 일어서서 / 하늘 지붕의 기둥이 되는 / 금강송의 나라 / (…)
양껏 담아 먹는 뷔페식
시인이 아니더라도 금강소나무 숲길 트레킹을 마칠 즈음이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1박2일의 근육통을 얻는 대신 마음의 짐은 덜게 된다. 하늘 높이 솟은 금강소나무 덕일까, 그 옛날 치열한 삶을 살았던 보부상들의 위로 덕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