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대사 머문 호국불교의 성지…한국의 산악미 집약돼 있어
묘향산은 지리산처럼 웅장한 산세와 금강산의 신비스러운 기암괴석의 절경을 겸비한 최고의 명산이다. 서산대사는 <조선사산평어>에서 조선 4대 명산인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 구월산을 웅장함壯과 빼어남秀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금강산은 수이부장秀而不壯(빼어나지만 웅장하지 않고)하고, 지리산은 장이불수壯而不秀(웅장하지만 빼어나지 않고)하며, 구월산은 부장불수不莊不秀(빼어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하나, 묘향산은 역장역수亦壯亦秀(웅장하면서도 빼어나다)하다’고 평가하며 4대 명산 첫 자리에 묘향산을 뒀다. 손경석 선생도 묘향산을 두고 “보기에도 좋고 올라가면 더욱 좋은 명산 중의 명산”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밖에도 묘향산을 한반도 대표 명산으로 추앙한 기록들이 많다. 이중환의 <택리지>와 김종직의 <석계징유지리산서釋戒澄遊智異山序>에는 ‘조선의 명산 중 북쪽의 명산은 묘향산’이라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더불어 묘향산은 조선 태조 때부터 중악 계룡산, 하악 지리산과 함께 삼악 중 상악을 담당했다고 하며, <중종실록>에 ‘오악 중 서악은 묘향산이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공인된 명산이다.
분단 직후에는 북한 정권에 의해 ‘묘향산자연보호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북한매체 <조선의 오늘>은 ‘묘향산은 조선의 6대 명산이자 조선 8경의 하나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또한, 김일성 주석은 “묘향산은 산세가 기묘하고 수려하며 경치가 아름답다”며 일제시기 묘향산지구에 일본인에 의해 개발됐던 금광을 영구히 폐쇄하고 명승지로 조성했다.
묘향산 원망봉 전경. /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묘향산의 운해. /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보현사의 암자인 상원암에서 맞는 석양. / 사진 <조선중앙통신>
평안북도 영변군·희천군과 평안남도 덕천군에 걸쳐 있는 묘향산(1,909m)은 청천정맥의 으뜸산이다. 백두대간 소마대산에서 분기한 산줄기는 웅어수산에서 또 두 줄기로 분기한다. 한 줄기는 북서 방향으로 분기해 관서정맥(구 청북정맥)을 이루며, 남서 방향으로는 청천정맥(구 청남정맥)을 이룬다. 청천정맥은 평안도를 남북으로 가르며 남서 방향으로 뻗다가 대동강 하구 광량진으로 빠져든다. 청천정맥은 낭림산, 웅어수산 등 2,000m대 고산을 일으켜 세우다 마지막 기운을 모아 묘향산을 빚어냈는지 묘향산 이후 청천정맥을 이루는 산줄기는 대부분 500m 미만의 저산지다.
‘묘향妙香’이란 지명은 향기 그윽한 향나무와 측백나무들이 많은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조선 초 <고려사 지리지>와 고려 중기 일연의 <삼국유사>에 등장해 11세기 초부터 이미 통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묘향은 불교용어로 기향奇香을 말하는데, 이것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나오는 말이다. 묘향에는 다문향多聞香·계향戒香·시향施香 3종이 있으며,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풍기는 향이다. 세상 논리를 거스르는 향기, 곧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그전에는 연주고을(영변)에 속했다고 해서 ‘연주산’, 고려 중엽 이후에는 산의 바위들이 유달리 희고 정갈하다고 해서 ‘태백산太白山’이라고도 불렸다.
또 다른 이름은 북한의 서쪽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산이라 해서 서산西山이다. 임진왜란 때 왕명을 받들어 묘향산을 근거로 의승병義僧兵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평양을 탈환하고, 서울까지 왕을 호종한 휴정休靜의 별호인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서산대사는 40대 후반 금강산에서 묘향산으로 들어와 입적할 때까지 약 40년간을 묘향산에 머물렀다. 서산대사가 묘향산을 명산 중 으뜸으로 여긴 이유다.
북한 최대의 사찰 보현사 등 역사 유적 많아
묘향산 원망봉 전경. / 사진 조선향토대백과
묘향산 이선남폭포. / 사진 <우리민족끼리>
묘향산에서 등산을 즐기고 있는 북한의 청소년들. / 사진 <우리민족끼리>
묘향산 일대는 고려시대부터 불교문화가 탁월하게 발달해 현재도 불교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묘향산에는 무려 360개 암자庵子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목은 이색李穡의 <기문記文>에도 ‘묘향산에는 선불仙佛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는 구절이 보인다. 특히, 서산대사가 머물렀던 보현사普賢寺는 한국 5대 사찰이자 북한 최대의 사찰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사비寺碑에 의하면 보현사는 1042년(정종 8년) 화엄종 승려 탐밀探密과 굉확宏廓에 의해 창건됐다. 고려 말에는 그 규모가 240여 칸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으며, 이후 소실과 중창을 거듭했으나 여전히 귀중한 역사유적과 유물들이 보전돼 있다. 북한 국보문화유물 제57호인 관음전觀音殿, 서산대사를 배향한 사당인 수충사酬忠祠, 6·25전쟁 때 소실된 금강산 유점사에서 발굴해 묘향산으로 옮겨 안치한 국보유적 제162호 유점사범종楡岾寺梵鐘, 1044년에 세워진 국보유적 제142호 보현사 4각9층탑 등 수많은 국보 문화재들이 보현사 내에 보전되고 있다.
또한 묘향산은 조선 후기 1606년부터 1628년까지 22년간 사고지史庫址 역할도 담당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전주사고에 소장됐던 역대 실록은 안전문제로 멀리 북쪽의 묘향산의 불영대佛影臺로 옮겨졌는데, 이후 정묘호란이 발생하자 다시 남쪽의 무주 적상산과 강화도 마니산으로 옮겨져 위난을 피했다.
환웅이 처음 내려오고 단군 태어난 영산
유려하게 뻗어 있는 묘향산 능선. / 사진 <조선중앙통신>
묘향산 향로봉의 남쪽 기슭에는 높이 4m, 너비 16m, 길이 12m의 단군굴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웅녀가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환생해 단군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근방에 단군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단군대와 과녁으로 쓰였다는 천주대가 있어 묘향산이 단군신화의 주 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김성환의 <고려시대의 단군전승과 인식>에 의하면 이외에도 단군을 모신 불교 암자인 단군암檀君菴,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삼성암三聖菴, 단군이 활쏘기 연습을 할 때 하인 돈오가 화살을 주워 온 곳이라는 돈오동頓悟洞 등의 단군유적들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묘향산이 단군신화가 서린 영산으로 추앙받은 것은 환웅이 처음 내려온 산이라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려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고기>를 인용해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왔다’고 기술하며 각주를 통해 ‘이때의 태백산은 묘향산이다’고 밝혔다.
고대 신화시대에 있어 산은 일반적으로 신이 내려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민족의 기원인 단군이 태어난 곳이자 환웅이 강림한 곳이라는 기술은 묘향산이 신화적 사유와 숭산사상의 대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편, 현대 한국 사학계는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의 위치를 일반적으로 백두산으로 상정하고 있다.
묘향산은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과 더불어 산악미 측면에서도 조선 최고의 명산이라는 아성에 어울리는 풍모를 뽐낸다. “금강산이 1만2,000봉이면 묘향산은 8만4,000봉”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가 산 곳곳에 산재해 있다. 또한 평양에서 두 시간 거리로 가깝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묘향산의 자연보전과 관광자원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이 이뤄져 국제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지난 2016년 7월에는 삼형제폭포와 12단 폭포를 경유하는 천태동 등산로 1km 구간을 새로 건설했다.
묘향산은 희천 비로봉(1,909m)이 있는 곳을 구향산, 보현사가 있는 쪽을 신향산이라 부르며 각각을 외향산·내향산으로도 부른다.
경치가 더 뛰어난 곳은 신향산이다. 신향산은 비로봉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안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주봉인 비로봉으로부터 일곱 개의 암봉을 자랑하는 칠성봉峰七星(1,894m), 정상에 오르면 불가의 경지에 오른다는 원만봉圓滿峰(1,825m)을 비롯해 천왕봉天王峰, 선유봉仙遊峰, 강선봉降仙峰(1,613m) 등 높은 기암괴봉들이 솟구쳐 있으며 골짜기에는 상원동, 만폭동 비로봉골을 비롯한 깊고 경치 좋은 계곡들이 뻗어 있다.
봉우리가 높은 만큼 깊은 계곡에는 무수한 폭포들이 절경을 이룬다. 상원동 계곡에는 유선, 금강, 대하 등의 폭포가 있으며, 계곡 상류 인호대에는 산주폭포와 쌍둥이를 이루는 높이 84m의 용연폭포, 86개의 천신폭포 등 3대 폭포가 있다.
만폭동萬瀑洞 역시 금강산에 버금가는 절승으로 높이 50m의 무릉폭포, 아홉단으로 250m를 낙하하는 구층폭포, 높이는 40m이지만 폭이 80여 m나 되는 호쾌한 은하폭포 등이 산재해 있어 세상에 모든 폭포를 모아 놓은 곳이라는 별칭을 갖는 곳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1931년 언론에 연재한 묘향산 기행문 <향산유기>를 통해 묘향산 향로봉 정상의 조망을 ‘장활長闊한 천지가 너무나도 아득해 무언무상無言無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며 ‘만국도성萬國都城이 개미둑 같다는 서산대사의 시로는 이 광경을 묘사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과연 묘향산은 역사적 가치와 경관 가치를 아우르는 조선 최고의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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