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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명산순례기ㅣ가평 석룡산] 여름 산, 불이 되어 물을 안다

by 白馬 2017. 8. 5.

 

가평은 전체 면적의 83%가 산지로 이루어진 고장이다.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운악산, 명지산, 유명산, 연인산, 국망복, 축령산 등이 가평의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은 가평의 형승에 대해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맹균(1371~1440)의 시를 인용해, ‘가닥진 여러 봉우리 온 고을을 감쌌는데, 천 가지 만 가지 모습이 다 신기하고 기이하다’고 했다. 여기에 더하여 동쪽으로 북한강을 끼고 있으니, 산수가 두루 아름다운 곳이 가평이다.

석룡산石龍山·1,147m. 이름 우렁차고 높이 또한 만만찮지만, 유명세는 다소곳한 산이다. 이 산의 동쪽에 솟은 화악산의 명성에 가려졌던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이 산은 화악산의 한 봉우리라 해도 좋을 만큼 화악산과 하나의 산괴를 이루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석룡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희미하게나마 이 두 산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은 석룡산 동쪽의 쉬밀고개(화악산 서쪽)일 것이다.

근래에 석룡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산 남쪽 기슭의 ‘조무락골’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1990년대 말 등산 붐이 거세게 일고 난 다음 (발전의 형태로) 등산 패턴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정상 위주의 산행 문화에 대한 회의 또는 반성과 함께 계곡 산행과 백패킹이 등산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등산 전문 잡지를 필두로 온갖 매체와 지자체에 의해 전국의 ‘오지’는 ‘탐색’됐고, 이제는 누구나 몇 번의 클릭이면 족한 ‘검색’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조무락골’이 빠질 수는 없었다. 조무락골이 배낭 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이 넘쳤기 때문이다.

 

조무락골의 너설과 계류가 곧 ‘석룡’이다.

조무락골의 너설과 계류가 곧 ‘석룡’이다.

 

 

조무락골을 벗어나 쉬밀고개로 오르는 기슭의 참나무숲.

조무락골을 벗어나 쉬밀고개로 오르는 기슭의 참나무숲.

 

석룡산 오르는 일은 석룡 타고 새처럼 춤추는 것



조무락골의 매력은 첫째,
재미있는 이름에서 비롯한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산이 계곡을 ‘조몰락대는’ 모습이 만져질 듯하다. 그 모습이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입말’로는 ‘조무락’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스토리가 얹혀졌다. 조무락골 가까이에도 (언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식자깨나 든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네들 중 누군가가 한자로 ‘鳥舞樂’이라고 적고 보니 스토리는 그럴듯해졌다.

‘산새들이 춤추며 즐기는 골짜기’가 된 것이다(현재 유통되는 조무락골의 이름 내력은, ‘산새들이 춤추며 즐긴다’는 뜻의 ‘鳥舞樂’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근거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조무락’이라는 의태어를 한자로 표기한 언어유희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 또한 근거는 없다. 하나의 생각을 내 놓을 따름이다).

둘째, 조무락골은 넓고 깊은 협곡이 아니지만 대단히 깊어 보인다. 울창한 수림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숲이다. 그 숲의 깊이로 말미암아 조무락골은 심한 가뭄에도 완전히 마르지 않는다. 한겨울 얼음이 언 때가 아니라면 계곡은 언제나 ‘조무락’거린다.

셋째, 조무락골 산기슭 이쪽저쪽에서 많은 계곡들이 끼어든다. 따라서 계류의 모습은 변화무쌍하고, 소리는 웅장하고 풍부하다.

넷째, 조무락골은 계류의 흐름이 가파르지 않은데도 소와 담, 폭포가 연이어진다. 골짜기의 바닥이 너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계류를 따르는 산길은 편안한데도 시각적 상승감은 대단히 역동적이다.

다섯째, 조무락골의 숲은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림이다. 참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등의 활엽수가 다채롭게 계절을 빛낸다. 특히 개체가 많은 단풍나무는 계곡으로 드는 풍부한 햇살과 계류의 서늘한 기운으로 하여 가을 정취를 황홀하게 한다.

 

조무락골의 계류, 춤추는 바위.

조무락골의 계류, 춤추는 바위.

 

 

남쪽 기슭 하산 길의 잣나무 숲길.

남쪽 기슭 하산 길의 잣나무 숲길. 소나기에 씻긴 숲 바닥이 태양 빛을 양껏 머금었다.

 

이쯤에서 석룡산의 이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석룡산 정상은 물론 등성마루 어디에도 ‘석룡石龍’은 없다. 산의 형상은 용을 닮지 않았고, 용을 닮은 바위도 없다. 그런데 왜 석룡산이라 이르는가. 조무락골이 바로 석룡이다. 마르지 않는 계류와 너설로 이루어진 골짜기 자체가 용인 것이다. 그 용은 이무기가 아니다. 승천하는 용도 아니다. 하강하는 용이다. 인간을 위해서 하강하는 용. 용은 물의 상징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조무락골의 계류는 생명의 용틀임이다. 조무락골을 따라 석룡산을 오르는 일은 석룡을 타고 새처럼 춤추는 것이다.

가평읍에서 75번국도를 타고 가평천과 나란히 화천을 향해 가다 보면 도마치 못미처서 삼팔교가 나온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열린 계곡이 바로 조무락골이다. 조무락골에서 흘러온 물은 삼팔교에서 도마천을 만나 가평천으로 이름을 바꾸어 흐르다 가평읍 자라섬에서 북한강과 한 몸이 된다.

조무락골의 초입은 세상과 만나는 곳답게 전형적인 계곡 유원지 상가다. 길과 경계를 이룬 상가의 작은 꽃밭에 동자꽃이 구름 저편 태양을 대신해 한여름을 빛낸다. 동자꽃 웃음 한 송이가 두메의 분위기를 그러잡고 있는 것이다.

 

여름 숲은 초록에 초록을 더하여 단단해지고, 끝내 불이 된다.

여름 숲은 초록에 초록을 더하여 단단해지고, 끝내 불이 된다.

 

 

불이 된 여름 숲의 불꽃같은 큰까치수염.

불이 된 여름 숲의 불꽃같은 큰까치수염.

 

 

조무락골의 물빛을 닮은 산수국.

조무락골의 물빛을 닮은 산수국.

 

 

엎드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복호동. 숲 사이로 가뭇없이 멀어지는 폭포 상단부가 하늘로 오를 듯하다.

엎드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복호동. 숲 사이로 가뭇없이 멀어지는 폭포 상단부가 하늘로 오를 듯하다.

 

몇 발짝 찻길을 벗어났는데도 서늘한 기운이 완연하다. 큰물이 진 직후여서 계곡의 물소리는 우렁차고 바위에 붙은 돌단풍은 씩씩하다. 1km쯤 비포장 찻길을 걷자 마지막 민가 조무락산장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기슭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과 조무락골을 따르는 길이다. 당연히 조무락골로 든다. 골짜기 바위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계류가 옥빛으로 바뀌기를 거듭한다. 길가의 산수국도 물빛을 머금고 있다.

골짜기는 아주 조심스럽게 허리를 높이지만, 계류가 바위를 조몰락거리는 소리는 현저히 높아진다. 국도에서 벗어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원시의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그 느낌에 흠뻑 젖을 무렵 동쪽 산기슭 쪽으로 또 하나의 골짜기가 열린다. 복호동伏虎洞, 다시 말하자면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의 골짜기다. 그리 길지 않은 이 골짜기 전체가 폭포다. 아랫부분은 와폭이지만 상승감은 날렵하다. 폭포의 상단부는 숲 사이로 가뭇없이 멀어진다. 그 끝은 하늘이다. 폭포는 떨어지는 물이 아니라 일어서는 물이다. 나무와 함께 꼿꼿해지는 물이다. 하늘 아래 물보다 단단한 것은 없다. 만물은 물로 하여 하늘에 이른다.

복호동을 되짚어 나와 조금 더 오르자 암반 위로 흘러든 물이 담을 이루었다가 폭포를 이루어 내달린다. 정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조무락골은 오밀조밀해지고 숲은 더 깊어진다. 짝짓기를 끝내서일까. 새들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춤추는 건 새가 아니라 계류에 흔들리는 바위다. 물을 안은 바위는 말랑말랑하다. 물에 저항하는 바위는 없다.

정상을 1.5km 정도 남겨 둔 지점에서 조무락골과 작별한다. 이곳에서부터 등성마루를 만나는 쉬밀고개까지 500m는 상당히 가파르다. 하지만 숲이 워낙 깊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숲에 빨려드는 느낌이다. 신갈나무 숲은 하늘처럼 깊다. 검게 빛난다. 아마도 이 빛을 ‘현玄’이라 할 것이다.

검은 숲을 빠져 나오자 단풍나무 숲이 하늘을 이루고 있다. 초록 위에 또 초록, 겹겹이 초록이다. 초록이 이토록 단단한 색인지 지금껏 몰랐다. 여름 숲은 그저 짙푸른 줄로만 알았다. 여름날의 태양은 세상의 나뭇잎을 바위로 단련시킨다.

쉬밀고개에서부터 능선은 편안한 숲길이다. 역시 깊다. 1,000m가 넘는 능선에 이렇게 울창한 숲은 드물다. 토심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보면 땅을 안다고 했다.
석룡산은 그 이름과 달리 전형적인 육산이다. 정상에는 얼기설기 바위가 앉았지만 우뚝함과는 거리가 멀다. 정상석이 비대칭으로 더 커 보인다. 사위는 숲으로 가려졌고, 열린 곳은 하늘뿐이다.

석룡산은 숲을 길러 하늘과 일체를 이루었다. 그 숲은 태양의 분신, 곧 불이다. 석룡산은 조무락골이라는 용(물)을 안은 불이다. 어디 석룡산뿐인가. 세상 모든 산은 스스로 불과 물이 되어 세상을 살린다. 극심한 가뭄을 견뎌내게 한 것도, 비록 얼마 전 큰물로 수재를 입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 정도에 그친 것도 산으로 말미암음이다.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남동쪽으로 산날을 따라 흐르는 숲길이다. 내리막이 제법 박하긴 해도 역시 깊은 원시림이다. 원시림을 지나자 우람하게 잘 가꾼 잣나무 숲이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간 잣나무 숲 바닥이 저녁 햇살인 양 붉다.

잣나무 숲이 다하자 낙엽송 숲이 하늘로 오르는 폭포를 이룬다. 사람의 손길로 만든 숲도 이 정도면 하늘에 닿을 만하다. 낙엽송 폭포를 지나자 다시 조무락골이다. 세상으로 하강하는 용을 타고 새처럼 춤추는 환상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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