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남난희의 느린 산] 차 한잔 쉼이 있는 길, 용강마을로 오세요

白馬 2025. 2. 27. 09:18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마을길을 이은 걷기길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산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강마을 마지막집. 

 

하루는 산에 다녀오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안내판이 동네 어귀에 세워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마을 옛길 탐방 코스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다모여’라는 명칭으로 용강마을 옛길 탐방 코스가 생긴 것이다. 전체 7개 코스이며 주로 동네 골목길과 농로, 차밭, 찻집 등을 이어 만든 걷기길이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과 농사를 짓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을 이었다고 한다.

다모여는 ‘다: 다시 찾고 싶은, 모: 머물고 싶은, 여: 여유로운’의 약자라고 한다. 코스의 명칭은 이 동네 방언으로 지었다. 생나드리길, 평뱀이길, 옛 장안사길, 고랑물길, 뒷 번데기길, 용갱이길, 무지개골길 등이다.

 

용강마을 걷기길인 ‘다모여’ 길목의 쌍둥이 나무.

 

우리 동네는 쌍계사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쌍계사 연못에 불기운이 비치면 건너 산에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서고는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쌍계사 스님들은 건너편 구름이 항상 서려 있는 곳에 용이 산다고 했다. 구름이 일고 무지개가 서리는 곳을 무지개골이라고 했고, 마을 이름을 산등성이에 용이 산다고 하여 ‘용강’이라 했다고 한다. 

평뱀이는 평지라는 말로 화개에서 유일하게 평지가 있어서 논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국립공원 하동분소가 그 터를 잡고 있다. 이름이 생소하고 길 표시는 전체 지도 말고는 각각의 길을 그냥 지렁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려 놔서 무슨 부호 같기도 하고, 그냥 그어 둔 선 같기도 해서 나는 알아보기 어렵게 생겼다.

 

화개면의 중심 용강리 마을 탐험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지 20년을 한참 넘겼지만 내 집 주변만 맴돌았지 동네를 들여다 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강리 걷기길인 ‘다모여’ 코스 안내판. 

 

동네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집이 외딴 곳에 있다 보니 사람들과 만날 일도 그리 많지 않았고 산으로만 다니는 습관상 동네를 어슬렁거릴 일은 거의 없었다.

마침 동네 회관에 커뮤니티 센터를 열고 동네 길이 생긴 것을 알리는 행사를 한다기에 나가서 지도를 하나 챙겼다. 나는 걷는 사람으로 동네 길이 생겼다는데 당연히 관심이 갔고 어떤 길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너무 모른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 길을 나섰다. 길이랄 것도 없이 그냥 동네 골목길인 경우도 있고, 차밭 고사리 밭으로 가는 길도 있고, 제법 까끄막(가파른의 방언) 길도 있고, 완전 야생의 산길도 조금 있었다.

겨울에도 푸른 남새. ‘남새’는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을 말한다. 

 

그중 산으로 올라가는 까끄막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곳도 있고, 영 다른 동네 같은 느낌이 나는 곳도 있었다. 우리 동네가 화개면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 아직은 길 표시가 없어서 지도만 보며 몇 번을 동네 주변과 골목을 오르내리기며 맴돌기도 했다.

동네 안에서는 마을 탐험이라도 하는 기분이었고 인적이 없는 곳은 오히려 느긋했다. 내 집처럼 아주 오랜 농가는 거의 없고, 번듯하고 현대식으로 개조한 집이 많았고 새롭게 지은 집도 많았다. 빈 집으로 보이는 집도 많았다. 시골에 빈 집이 늘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겨울이라 더 그렇겠지만 길에서 사람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요행히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차를 마시고 가라고 잡았다, 화개는 차의 고장인 관계로 집집마다 차를 만들거나 차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집이 많을 것이다. 

또한 차인茶人(차를 생산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들의 차를 맛볼 수 있는 행운도 있다. 예전부터 전통성을 고집하는 차인도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차인도 있을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 해서 만들어 내는 차에는 그들의 수고와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걷기길 여행자를 위한 데크 전망대인 ‘별천지 쉼터’. 

 

총 7코스라는데 길이가 아주 짧아서 길이라기보다 이웃집 가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고, 동네를 벗어나 가파른 경사를 자랑하는 길도 있다. 이곳은 화개라는 이름에 걸맞게 겨울에도 따뜻해서 밭에는 아직 남새(밭에서 기르는 농작물)가 남아 있기도 했다. 겨울 내 얼지 않고 땅에 딱 붙어서 봄을 기다릴 것이다.

볕 좋은 곳은 꽃도 아직 남아 있다. 낮은 담이 정겨운 집도 있고 재미있는 장식을 한 개성이 넘치는 집도 있다. 전망 좋은 곳에 ‘별천지 전망대’라는 쉬는 곳을 만들어 놓았다. 날씨가 포근해지면 다구를 챙겨 와서 풍광을 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셔도 좋겠다. 

별천지라는 명칭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일까? 하지만 이제는 시골도 예전처럼 별을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동네마다 가로등을 너무 많이 밝혀둬서 밤에 별이 예전처럼 반짝이는 풍경은 없어졌고 은하수도 자취를 감춰 버린 지 오래다.

 

40kg LPG 가스통 짊어지고 오른 토굴

길은 대부분 동네 길이거나 농로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포장되어 있다. 그중 내가 자주 갔던 길은 가장 긴 코스다. 집 뒷산인 황장산을 오를 때 화개장터로 갈 때도 있지만 이 길을 이용하기도 했다. 

길이 가팔라지며 집은 점점 없어지고 주로 밭이 많은데 낮은 곳은 늘 푸른 녹차 밭이 많고 높이에 따라 매실, 감, 고사리, 두릅, 고로쇠, 밤 등이 심어져 있고 이제는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넝쿨만 무성한 곳도 있다.

농사지을 어른이 점점 없어지며 묵은 밭도 있었다. 예전에는 차밭이었던 곳이 고사리 밭으로 변한 곳도 많았다. 자본의 소비에 따라 생산되는 농산물도 따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등에 땀이 밸 정도의 오르막을 오르면 동네의 마지막 집이 나온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마을길을 산책하는 노인들.

 

올라가며 간간이 몇 집이 있지만 지금은 사람은 살지 않고 농막으로만 사용하는 집들이다. 과거 찻길은 물론 차도 없을 때, 그 급경사 길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지금도 농사철이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는 집 주인 김점옥(70) 할머니는 50년 전 가마를 타고 그곳으로 시집을 왔단다.

섬진강 건너 ‘간전’이 친정인 할머니는 시집 올 때 여러 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일단 전라도 땅 간전 집을 나와 섬진강에서 줄 배를 타고 화개로 건너와서 택시를 타고 용강마을 입구까지 왔다고 한다.

용강마을에는 녹차밭이 많다. 사계절 언제나 푸른 녹차밭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부터 비로소 가마를 타고 올라갔단다. 지금처럼 넓은 신작로도 아닌 오솔길을 그것도 경사가 장난이 아닌 곳을 가마를 메고 오르느라 가마꾼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며, 가마를 탄 꽃 각시는 또 얼마나 설레고 조마조마하고 두렵고 힘이 들었겠는가?

견디다 못한 스무 살 꽃 각시는 가마에서 내린 뒤 걸어서 시집에 도착했단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50년 전의 꽃 각시는 그 이야기를 할 때 볼이 살짝 붉어졌다. 그 높은 곳의 초가집에서 기다리던 신랑은 오솔길을 신작로로 만들어 두고 먼저 먼 길을 떠나셨다.

점옥씨는 고사리 철이나 고로쇠 물을 받으러 그곳을 오르내리며 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그마나 그의 밭들은 묵어 버릴 것이다. 그 밭을 끝으로 동네에서 소개한 길은 끝나고 이제 산길이 이어진다.

 

용강리의 고로쇠 나무숲. 

 

몇 년 전까지 조금 위에 토굴이 하나 있어 여러 스님이 번갈아 살다 가기도 했는데 언제 가보니 집은 불에 타 버렸고 집터만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래전에 그 토굴에서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비구니 스님이 일회용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40kg이나 되는 가정용 LPG가스 한 통을 져다 준 일이 아스라이 기억난다.

그 길에서 나도 참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아차린다. 모처럼 올라온 김에 그 토굴 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겨울의 짧은 해는 냉기만 남기고 사라지고 등에서 난 땀에 살짝 한기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동네의 낯선 길들을 더듬어 본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