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박하는 사람들] “집에선 학원·게임 쳇바퀴…아이가 밝아졌어요”
다섯 팀 인터뷰
‘장박’은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한 달 이상 머무는 것을 뜻한다. 이때 텐트는 고정된 장소에 설치하고 정해진 기간까지 철수하지 않고 놔둔다. 텐트를 설치한 캠퍼는 그동안 마음대로 캠핑장 혹은 텐트에 드나들며 캠핑을 즐긴다. 캠핑장에서 ‘장기간 숙박한다’는 말을 줄인 장박의 개념은 이렇다. 이때 쓰이는 텐트는 대체로 크기가 크다. 즉, 장박은 주로 오토캠핑을 즐기는 캠퍼들에 의해 이뤄지고, 겨울이 성수기다. 그 기간은 대략 12월~3월까지로 잡는다. 지금 각 캠핑장마다 장박하고 있는 팀은 10~20팀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용인에 있는 ‘파이브이모션 관광농원’ 캠핑장에서 5팀의 장박 캠퍼들을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별장은 한 곳에 머무는 단점 장박은 여기저기 옮겨다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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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씨 가족 3인이 머무는 텐트 내부. 안쪽의 A형 텐트는 침실이고 그 외는 거실이다. 거실 한쪽에 창고도 있다.
정상원(방송사 PD, 46세), 정세린(40세), 정윤아(1세) 가족 / 서울 거주
정상원씨 가족은 오래전부터 오토캠핑을 해오다가 올해 처음 장박을 시작했다. 이전 2박3일 1회 캠핑 시 장비를 세팅하고 철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장박은 이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덕분에 더욱 편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그가 말한 장박의 장점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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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텐트. 화로대가 외부에 따로 설치되어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올 때 일반 캠핑은 불편한 점이 많아요. 철수할 때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장박은 문만 닫아놓고 나가면 되니 편해요. 비가 들이쳐서 텐트 안으로 물이 샌 적은 없어요. 눈이 많이 올 땐 관리실에서 텐트에 들어와 난로를 작동시켜 줘요. 덕분에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다 녹아 없어지죠. 걱정할 게 별로 없어요.”
정상원씨의 텐트 내부는 잘 꾸며졌다. 이 정도면 별장을 빌려서 지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물었는데 그럴듯한 대답을 했다.
“별장에 머물면 제가 가고 싶은 지역에 갈 수 없잖아요. 올해는 여기서 장박을 하고 내년엔 다른 곳에서 장박을 하면 더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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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텐트 안에 설치된 안방. 바닥에 에어매트가 깔렸고, 그 위에 전기장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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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본 텐트. 거실 텐트와 티피 텐트 모두 노르디스크 제품으로 얼마 전 대규모 할인 행사할 때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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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위에 얹는 무동력 팬. 팬의 아랫부분이 난로의 열기 때문에 뜨거워지면 팬이 돌아간다. 팬 하나가 난로 값과 비슷한데, 이 장비 하나로 텐트 내부 전체를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장박은 겨울이 성수기… 여름엔 곰팡이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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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기, 임영순 가족이 쓰는 텐트의 거실. 둥그런 돔형 텐트 두 동을 연결해서 쓴다. 내부는 최상기씨가 꾸몄다.
최상기(직업군인, 56세), 임영순(교육공무직, 52세) 가족 / 경기도 용인 거주
최상기씨 가족은 장박 경력 3년차다. 이전까지 오토캠핑 경력은 20년 정도 된다. 겨울에만 장박을 하는 편이고, 나머지 계절엔 일반 오토캠핑을 한다. 그에 따르면 여름 장박은 하기가 어렵다.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축축한 상태로 텐트를 방치할 경우 천이나 장비 등에 곰팡이가 생기는 경우가 많고, 벌레 등에 의한 피해도 종종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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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본 텐트. 우레탄으로 된 창이 특징이다. 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잘 꾸며진 내부가 살짝 들여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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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텐트를 총 3동 사용 중이다. 두 동은 연결해서 안방과 거실로 쓰고, 나머지 한 동은 화로대 전용으로 쓴다.
“여름 장박은 ‘비추’예요. 곰팡이 하나 때문에 다 망가져요. 텐트, 의자 등 모든 곳에 곰팡이가 생겨요. 제습기를 사용해도 소용이 없어요.”
이 가족 역시 별장이나 콘도 회원권을 구매해 지낼 계획이 없다. 왜냐하면 장박보다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캠핑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잘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감성도 좋지만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장박만의 매력이다. 특히 아내 임영순씨의 불편함(설치와 철수)을 최대한 줄인 방식이 바로 장박이다. 아내가 말한 장박의 장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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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장비는 스노우피크 아이언 그릴 테이블이다. 접이식이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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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겸 안방. 가족 네 명이 여기서 잔다.
“아이들은 집에 있을 때 밖으로 안 나가려고 해요. 이런 데 나와야 잠깐 산책이라도 하죠. 집에 있으면 안 하던 걸 여기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가족들 간의 대화 같은 거요. 장박을 할 때 가장 필요한 조건은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 나태해져… 자유로운 텐트생활이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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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쓰는 15인용 텐트 내부. 웬만한 가정집 안방보다 안락하다. 텐트는 지금 단종된 마운틴 하드웨어의 스페이스 스테이션이다. 그는 이 텐트를 중고로 구매해 150만 원 들여 수리했다.
안병욱(건축설계사무소 대표, 48세) / 경기도 성남시 거주
캠핑장에서 가장 눈에 띈 텐트다. 그가 사용 중인 마운틴하드웨어의 스페이스 스테이션 15인용 텐트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용으로 현재 단종된 상태다. 국내에 이 텐트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 텐트를 중고로 구입했다. 15년 정도 된 텐트를 150만 원 들여 깨끗이 수리해 올해 처음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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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외부. 2인 가족 사이트에 텐트 두 동을 설치했다. 주황색 텐트는 거주용이고 천장이 흰색인 텐트(마운틴 하드웨어 스페이스 스테이션 신형)는 창고용이다.
“제품을 처음 받았을 때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우레탄 창은 삭아 있었고, 여기저기 찢어져 있기도 했어요. 텐트 수리소를 찾아다니며 여기저기 고쳤어요. 심실링도 다시 하고, 창도 갈고요. 겨울 장박용으로 이 텐트는 최고예요. 지금 아주 만족합니다.”
그의 캠핑 경력은 5년 정도 된다. 주로 혼자 다녔다. 장박도 혼자 하고 있다. 15인용 텐트 두 동을 혼자 설치하고 꾸몄다. 사이트를 완성하는 데 무려 3주 정도 걸렸다. 그는 이곳을 자신만의 안전지대라고 불렀다. 천으로 된 텐트보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이 그래도 더 안전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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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용 혹은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쓰는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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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가운데에 자리한 화로는 바깥으로 연결된 LPG가스로 작동된다. 화로 안에 있는 돌은 화산석이다. 이 화로 덕분에 내부가 훈훈했다.
“집에 있으면 나태해져요. 한번 들어가면 나갈 수 없어요. 여기 있으면 공기 좋고, 음악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어요. 다른 의미에서 안전지대죠. 별장을 장만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런 방식은 또 너무 외로워요. 사람이 적당히 떨어져 있는 캠핑장이 제 성격에 딱 맞았어요(그가 텐트를 친 장소는 2인 가족용 사이트다. 다른 집 텐트가 가까이 붙어 있는 사이트보다 여유롭다). 여기 있다가 다시 일터로 가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는 느낌이 있어요. 캠퍼들만 아는 그런 게 있습니다.”
“아이가 친구 사귀기 좋아… 우리 가족만의 안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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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씨 가족이 머무는 텐트 내부. 큰 텐트 안에 작은 텐트를 설치해 안방으로 만들었다. 안방에서 가족이 함께 잠을 잔다.
조준호(회사원, 52세), 양현나(50세, 주부), 조은채(10세) / 경기도 안양시 거주
조준호씨 가족이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건 2016년경이다. 친척에게서 얻은 텐트 한 동과 약간의 장비를 가지고 제주도에서 3박4일간 머물렀다. 이후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났고, 곧 코로나가 발생했다. 캠핑을 잠깐 쉬었다가 2021년경 장박을 하던 어떤 가족의 초대로 신세계를 접한 다음 장박을 하게 됐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들이 캠핑을 하는 주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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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씨 가족의 사이트 겉모습. 거주용 텐트는 이도공감 제품이다. 천을 둘러 담을 만들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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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사이트에 설치한 텐트는 총 두 동이다. 주거용 텐트 옆에 설치한 쉘터는 창고다.
“캠핑장에서 아이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덕분에 저희도 다른 아이 부모들과 친해지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재미가 있어요. 이렇게 꾸며 놓으니까 세컨하우스 같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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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장비는 TV다.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뭐든지 시청할 수 있다. 밤에만 켤 수 있는 빔프로젝터에 비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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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앞에 걸린 문패.
장박을 하면 좋은 점이 또 있다. 회사와 학교, 학원 다니면서 보는 똑같은 건물 풍경 대신 나무와 흙이 있는 자연을 접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면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도 생겼다. 무엇보다 주말에 어디 가서 쉴지 고민하는 일이 없어졌다. 단점이 있긴 하다. 매주 텐트가 설치된 한 장소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점은 매년 장박 장소를 바꾸면서 해소하고 있다.
“자동차와 텐트 결합… 밀리터리 콘셉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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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뒤쪽 짐칸과 쉘터를 연결한 형태로 장박을 하고 있는 이영준씨와 친구들. 자동차 안에 파워뱅크를 매립해 따뜻하게 잘 수 있다.
이영준(키르기스스탄 여행사 운영, 43세), 정유리(43세, 광고 편집자), 박선녀(43세, 금융업), 철옹(정유리씨의 반려견, 9세)/ 경기도 일산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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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본 모습. 자동차와 연결을 풀고 쉘터를 단독으로 사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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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본 모습. 자동차와 연결을 풀고 쉘터를 단독으로 사용해도 된다.
세 명은 동갑으로 캠핑하면서 만나 친해졌다. 텐트 주인은 이영준씨로 다른 두 사람은 각자 백패킹용 소형 텐트를 챙겨왔다. 하지만 더 아늑하고 넓은 영준씨의 텐트 안에서 야전 침대 2개를 놓고 하루 신세지기로 했다. 그의 올해 장박 스타일은 자동차와 텐트를 결합한 형태다. 야외에서 좀 더 편안하게 자고 싶어 차박을 자주 하는데, 동시에 캠핑 분위기도 느낄 수 있도록 차 뒤쪽에 쉘터를 연결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자동차에 글라움베르Glaumber의 도킹 쉘터(차박 텐트)를 연결한 형태로, 자동차에는 파워뱅크(캠핑용 배터리)를 매립했다(파워뱅크를 설치하면 시동을 꺼도 전기를 쓸 수 있다). 자동차와 쉘터를 연결하고 해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다. 내부에 있으면 군용 막사에 들어앉은 기분이 드는데, 알고 보니 그는 밀리터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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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인 자동차 짐칸 내부. 그가 사용하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는 바닥 평탄화 작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캠핑을 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밀리터리 콘셉트로도 해보고, 부시크래프트 형식도 해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캠핑을 하고 있어요. 캠핑을 하면서 10년 다녔던 직장도 그만뒀어요. 직종도 바꾸고 지금은 해외 캠핑 여행지를 개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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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