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금정산 4대 성문 종주 18km…국내서 가장 긴 등산대회 코스

白馬 2024. 12. 16. 09:15
 

제18회 부산산악문화축제 4대 성문 종주 등산대회 참가기

 

출발 지점에서 출발 준비하는 참가자들. 비장한 눈빛으로 대회 시작을 준비 중이다.

 

가을이 유난히 반갑다. 지난여름 얼마나 더웠던가! 긴 무더위가 지나고 단풍이 시작되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금정산은 부산산악문화축제로 들썩거린다. 올해도 변함없이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제18회 부산산악문화축제가 개최되었다. 축제기간엔 산악강연회, 금정제, 산신제, 시민등산대회, 산그림 전시회, 등산장비 전시회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금정산 시민등산대회와 4대 성문 종주대회다.

 

금정산 4대 성문 종주는 성벽을 따라 가는 18km 코스이며, 등산대회로는 전국에서 제일 긴 거리라고 한다. 2대 성문 종주 대회도 열리는데 거리를 줄인 일종의 하프코스 대회인 셈이다. 2인 1조로 참여 가능해 나는 남편과 함께 혼성으로 출전했다. 

 

산용산악회에 입회한 지 벌써 9년차! 나의 닉네임은 아직도 ‘산초보’이다. 지난 3년간 전국대통령배등산대회에 출전해 일반여성부에서 메달권에 든 적도 있지만, 올해는 산행을 거의 못하고 게으름을 피웠다. 유난히 더워가 길었던 탓이라 핑계를 대 본다. 어느덧 찬바람이 불고 전국이 각종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해지니 흥이 차오르기 시작해 나도 슬슬 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떨어진 체력 탓에 쉽게 도전장을 내밀진 못했다. 

종주를 끝내고 골인. 가벼운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들어온다.

 

바로 코앞에 있는 금정산 4대 성문 종주를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결국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산행 코스 사전 답사를 갔다. 12km 거리의 2대 성문 종주 대회라면 완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완주만이라도 하자’하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혼성팀으로 출전 신청을 했다.

드디어 대회 당일! 화명동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다목적 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회 유니폼으로 환복하고 배번을 부착하고 있었다. 2대 성문 혼성 경기에는 총 35팀이 출전했다. 젊은 트레일러닝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순위에 들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단번에 ‘오늘 경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혼성 경기 참여자가 출발 전 기념사진을 촬영 중이다.

 

야속한 체력과 원망스러운 남편

아침 8시, 경기가 시작되어 한 팀씩 출발했다. 출발선에 서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체력이 안 되니 욕심을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른다.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처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 가벼운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이었다. 쉬운 길임에도 몸이 풀리지 않아 숨이 가빠 오고 다리가 무거워져 왔다. 게으름 피우고 산을 멀리한 탓이니 ‘운동 좀 할 걸’하는 후회가 든다. 그래도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임도가 나왔다. 짧은 오르막을 오르니 첫 번째 체크 포인트인 동문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동문(415m)은 4대문 중에서 가장 크고, 주능선에 있으며 금정 산성마을에서도 가깝고 접근성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동문에서 의상봉, 원효봉, 북문을 거쳐 고당봉에 이르는 코스는 동서로 펼쳐지는 부산의 경치를 잘 볼 수 있어 등산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코스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 서로에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4망루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뛰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호흡이 계속 가쁘다. 긴장한 탓인지 쉽게 안정되지 않는다. 헉헉거리며 올라가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선수들.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순위전이기 때문에 늦게 출발한 선수들이 우리를 앞질러 가는 모습을 보면 초조하고 기운이 빠진다. 발걸음도 더욱 무거워진다. 

 

규정상 일정 무게 이상의 짐을 배낭에 넣어야 한다. 남자는 무겁게, 여자는 가볍게 배낭을 메고 온 다른 팀들에 반해 우리는 같은 무게를 나눠 들었다. 더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평소에 운동 좀 하지”라고 말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비암과 부채바위를 지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오르막을 계속 오르는데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겨우 오르막 끝에 다다르니 잠시나마 힘듦을 잊게 해 줄 경치가 드러났다. 탁 트인 시야 아래에는 넓은 언덕이 보이고, 저 멀리 서낙동강 일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사진도 찍고 예쁜 풍경도 많이 담아 보고 싶었지만, 앞에 4망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체크포인트인 4망루는 조선 후기 금정산의 남과 북을 나누어 중성을 쌓았던 곳이다. 지금도 중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루에 올라 경치를 즐기고 싶었지만 남편의 “출발!” 소리에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의상봉과 무명바위를 스치듯 지나며 힘들게 원효봉으로 향했다. 데크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해가 비치고 숨이 차니 입안이 말라왔다. 둘이서 한 통의 물을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고 열심히 올랐다. 오르막과 능선을 반복하다 보니 북문으로 향하는 내리막 돌계단이 나왔다. 내리막이라 뛰고 싶은데 미끄러질까 하는 두려움에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남편은 저만치 혼자 내달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골인 지점에 마지막까지 힘을 내본다.

 

경치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산행을 한다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다. 쉼 없이 달리고 또 오르내리다 보니 40분이나 단축시켜서 1시간 20분 만에 북문에 도착했다.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북문은 고당봉까지 거리가 1km정도밖에 안 되지만 계속 오르막이고 계단도 많아서 힘든 구간이다. 북문에는 금정산 탐방센터와 화장실도 있고 세심정이라는 약수터와 그 옆에 2016년  번개에 맞아 파손된 옛날 고당봉 정상석이 전시되어 있다. 

 

문득 12년 전 초등학생이던 아들과 셋이서 고당봉 정상에 올랐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 꼬맹이 아들이 지금은 스물다섯. 세월이 훌쩍 지나 많이 자랐구나… 오르막을 오르니 힘들어서 그런지 추억도 순식간에 사르르 녹아 머릿속에서 흩어져 버렸다. 오르막을 내달려 순식간에 다른 선수들이 우리를 추월해 간다.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났다. 

 

금정산 4대 성문 종주 대회 지원 부스.

 

함께 걷는 사람들이 주는 힘

중간쯤 올라가고 있을 때 앞에 같은 산악회 대선배님께서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어리광 부리듯 인사를 드리고 힘겨워 숨을 헐떡거리니 “호흡 조절하면서 쉬지 말고 꾸준히 가자”라며 응원을 건넨다. “건강을 위해 등산하는 것이니 대회라 해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자”고 하셨다. 그 말에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계속 추월당하니 조바심에 나도 모르게 페이스를 오버하고 있었다. 호흡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심호흡하며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끝없이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 고당봉 정상 바로 아래 데크에서 세 번째 포인트를 통과했다. 

출발 시점에서 2시간 정도 경과된 7km 지점이었다. 오르막을 한참 올라온 터라 바로 코앞이긴 하지만 고당봉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뭔가 큰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아래로 내려가 서쪽 능선길을 타기 시작했다. 

 

동문~북문까지는 동쪽 능선보다 찾는 사람이 적다. 화명동과 금곡동, 호포역 방면에서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능선이다. 고당봉 가기 전에 미륵봉이 있고 그 아래에 범어사의 말사인 미륵사가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륵사는 가지 않고 능선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코스였다. 장골봉 석문까지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3km가량을 주파했다. 남편 등에 매달린 배낭만 응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좇아갔다.

 

도원사 체크포인트에 계신 심판관과 도원사의 풍경.

 

간간이 시민들을 만나면 여유 있게 자연을 즐기는데 뛰어가는 것이 방해될까 걱정이 되었다. 빠르게 지나가도록 한쪽으로 비켜 주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드리면 “대단하다”거나 “화이팅”이라는 말로 응원해 주었다. 

 

장골봉 석문에 도착했을 때 반가운 얼굴의 심판관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분은 경기 규정에 나온 팀별 중량 체크를 했는데, 다행히 15kg이 조금 넘는 무게로 통과했다. 도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다리가 풀려 내리막길도 쉽지 않았다. 다리에 파스를 뿌려가며 계속 내리막을 뛰었다. 몸은 분명 뛰고 있는데 현실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내리막인데도 힘이 들어 남편과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오솔길 저 끝까지 가버린 남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뒤를 좇아가느라 마음이 더 바빴다.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가다 학생수련원 앞 개울을 건널 때쯤 되어서야 남편을 만났다. 개울을 건너려는데 손을 잡아줘 쉽게 건널 수 있었다. 

 

출발 전, 지원 부스 밑에서 대회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막판 스퍼트… 골인!

개울 건너 오솔길로 접어들자 90°로 느껴지는 가파른 산길이 시작됐다. 몇 걸음 만에 엉덩이가 무겁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둘 다 지쳐서 바위에 주저앉아버렸다. “더 이상 못 가겠다.좀 쉬자”면서 숨을 몰아쉬며 물을 마시고, 한참을 쉰 후에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짠다’는 말이 실감나는 코스였다. 경쟁 팀을 만나니 그래도 “화이팅!”이 외쳐졌다. 동질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힘겹게 마지막 언덕을 오르고 철재 계단을 내려서니 도원사에서 불경소리가 들려왔다. 도원사는 소박하고 아담하며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마음이 따스해지고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포인트 체크를 하고 마지막 포인트인 결승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거리는 2km. 거의 평지인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여대생 팀도 만나고, 젊고 키가 큰 커플팀도 만나고, 다들 도착지를 향해 같은 마음으로 달렸다. 

 

행사장에 전시된 산그림 전시회.

 

다른 팀은 성큼성큼 큰 발치로 달려가는데 우리 부부만 종종걸음 짧은 보폭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무거운 다리지만 열심히 움직였다. 다목적 광장이 가까워지자 점점 속도가 붙었고 거리를 좁혀 나란히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이게 뭐라고,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힘들었지만 남편과 함께 완주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우리는 2대 성문 종주 12km를 3시간 10분 만에 통과했다. 우리도 못한 건 아니었지만 워낙 잘 달리는 선수들이 많아서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나 미련은 없다. 산악회 선배님들과 무탈하게 금정산을 누볐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다. 대회에 참가하길 참 잘 했다 싶었다. 

오늘을 함께 즐긴 모든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웃음 가득한 시상식이다. 함께한 팀원과 경쟁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부산산악문회축제 등산대회 코스 정보

▶4대 성문 종주(약 18km) 

광장 출발 → 동문(CP1) → 4망루(CP2) → 의상봉 → 원효봉 → 북문 → 고당봉(CP3) → 장골봉·석문(CP4) → 도원사(CP5) → 서문 → 파리봉 → 헬기장(CP6) → 남문 → 2망루(CP7) → 대륙봉(CP8) → 광장 도착

 

▶2대 성문 종주(약 12km) 

광장 출발 → 동문(CP1) → 4망루(CP2) → 의상봉 → 원효봉 → 북문 → 고당봉(CP3) → 장골봉·석문(CP4) → 도원사(CP5) → 산성마을 → 광장 도착 

각 CP 표기는 체크포인트이고, 순서대로 통과해야 하며 누락되거나 역순이면 실격이다. 종목에서 각각 1등, 2등, 3등, 4등에게 시상금이 지급되고, 완주자 전원에 기록증과 배지가 주어진다. 부산산악연맹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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