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사람이란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story)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일체의 시비분별이 만드는 생각과 감정의 난립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멍 때린다거나 바보 같다는 말이 아니다. 일체를 다 알되 그것을 훌쩍 초월해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 감정들을 어떻게 초월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심안이 열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탐진치(貪瞋癡)의 흐트러짐을 꿰뚫어보면서 그것들이 만드는 부정적 에너지의 생성, 소멸, 변화 과정을 정신적 차원에서 지켜보는 내적 힘을 가져야 가능하다.
진짜 자기를 구원하고 해탈하는 데에는 내면의 욕망, 시기, 질투, 분노, 열등감, 짜증으로부터 비롯되는 부정적 에너지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오직 한 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위해 예수는 서로 사랑하라 가르쳤고 석가는 제 마음속을 보고 지금의 수준으로부터 깨어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너는 이렇구나’ ‘그것은 그렇구나’하면서 제 수준에 따라 남을 판단 정죄하고 세상사를 시비 분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판단을 자꾸 하면 마음의 평화를 잃고, 부정적인 에너지 속에서 자기만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남을 시기질투하거나 정죄 심판하는 이가 아무리 교회나 절을 열심히 다니고 온갖 프로그램을 다 공부, 수행한들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자기가 자기를 부정적 에너지로 채우고 괴롭히는 그 버릇에 스스로 갇혀 고통받기 때문이다.
누가 그를 잡아서 가둔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 고통을 주며 살까 싶지만 우리들은 이미 너무나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자기자신을 바꾸고 거듭나지 않는 한 그 마음 상태가 천국극락에 가서 살만한 자격을 갖지 못한다. 스스로 바뀌지 않는 이상 스스로 고통을 주는 것도 계속 된다.
이는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을 서울대학에 억지로 입학시켜도 결국은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저 열심히 교회나 절에 다니는 것만으로 제가 구원 해탈 받는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진실로 구원받고 깨어나는 오직 유일한 길은 세상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내면의 평화를 먼저 얻는 길뿐이다. 자기가 남들과 세상이 만들어대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상처받는 수준이라면 그가 어떻게 내면적 자유로부터 만들어지는 내적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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