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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상도의 숨은 명산]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격암 남사고’를 찾아서

白馬 2022. 9. 23. 06:06

울진 남수산

 

남사고 묘소에서 바라본 남수산.

연못가 회화나무 흰 꽃은 송이송이 피었는데 물 위로 꽃잎이 둥둥 떴다. 집과 구름은 물속에 풍덩 빠져 있다.

토요일 아침 경북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의 몽천夢泉, 어리석음을 깨운다는 샘, 주역의 몽괘蒙卦에서 유래됐다는 작은 연못이다.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흐린 물이 솟는다는데 경술국치(1910년)·한국전쟁(1950년)·대통령 시해(1979년)·아웅산 테러사건(1983년) 때도 흙탕물이 나왔다고 한다. 몽천에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 세 임금이 선비들의 상소문에 답한 편지를 보관한 집이다. 임금의 답신은 없고 옛 기억만 남았다.

 

나라에 큰일 예언한 샘

단아한 집들과 허물어져 가는 풍경들은 고추·도라지·가지·호박꽃들과 땅을 나눠 쓰고 있다. 벼 익는 냄새 따라 걷는 정겨운 고샅길, 하얀 참깨꽃·콩·고구마·옥수수는 다닥다닥 악착스레 매달려 익는다. 마을회관 옆에 ‘남수산 석회광산 반대 범대책추진위원회’ 팻말이 걸렸다. 몽천의 흙탕물은 주변 광산 때문이라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원남면이 매화면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매야梅野였으니 이름을 다시 찾았다고 본다. 선비들이 살면서 매화를 많이 심어 이같이 불렸다는 것. 매화·금매 등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수산 산행기점은 울진군농업기술센터 앞 정자. 등산로 입구에 안내판이 있다. 정상까지 2km, 1시간 조금 더 걸린다. 무성한 수풀은 산길을 가렸다. 처음부터 깔딱고개, 300m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첫 번째 쉼터(정상까지 1.7km), 땀을 뻘뻘 흘리며 잠시 숨을 고른다. 직선으로 곧추선 소나무들은 붉은 각선미를 뽐내며 하늘 위로 뻗었다. 그 아래 산조팝·개산초·상수리·신갈·노간주·꽃싸리·쇠물푸레·철쭉·진달래·아까시·붉·팽나무·까치수염·청미래덩굴·삽주·꿩의다리 등 온갖 식물들이 서로 키를 대며 어울려 자란다. 

 

 

몽천과 삼존어비각. 몽천은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흐린 물이 솟는다는 전설이 있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 들리고 살랑살랑 산바람 강바람은 일행의 더위를 식혀주니 지금부터 휘파람 불며 걸을 만하다. 두 번째 쉼터(정상까지 1km)에서 쉰다. 이곳에 왕느릅나무가 자라다니. 어긋난 잎은 사포처럼 억세며 꺼끌꺼끌하고 가지마다 코르크 날개가 달렸다. 

왕느릅나무는 석회암지대에 잘 자란다. 단양·평창을 비롯해서 이 지역에는 울진 성류굴과 남수산이 있으니 석회암지대다. 코르크층을 벗

긴 수피를 유백피楡白皮라 해서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부은 것을 내리며, 종기·항암에, 나무껍질을 찧어 곪은 데 붙여 고름과 새살이 돋는 데 약으로 썼다. 

고샅길.

매화천 끝자락에 석회암 동굴

매화천 끝자락에 2억5,000만 년 전 생성된 석회암 동굴 성류굴이 있다. 고려시대 처음 발견되었으나 1963년 일반에게 개방되면서 많이 망가졌다.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입구를 막아 피란민 수백 명이 죽었다. 남수산 기슭에 굴이 있었는데, 돌을 던지면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후에 들려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이름났고, 성류굴·왕피천·남수산 땅속으로 이어져 지하금강이라 했다. 접시 모양으로 땅이 움푹 파인 돌리네doline, 지하에는 종유동굴이 발달된 카르스트karst지형이다.

 

쉼터에서 10분 더 걸어 임도 합류 지점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낙엽송이 길잡이처럼 섰고, 모시풀·칡덩굴·오동·오리나무도 여름날의 맹렬한 기운을 받아 저마다 잎이 넓다.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해 비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안개 섞인 실비를 만났다. 

 

“실비 오는 소리에 님이 올 것 같아서 ~  부시시 잠 깨어나서 먼 길을 바라보네 ~” 

흥얼거리는 일행과 흙냄새 섞여 어우러진 비 냄새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페트리커Petrichor다. 흙속의 박테리아가 만드는 화학물질 지오스민geosmin, 비와 섞여 나는 독특한 냄새에 비 오는 날이면 저마다 날궂이를 하게 된다. 

 

삼거리 세 번째 쉼터(정상까지 0.4km). 오른쪽으로 안테나 군사시설, 왼쪽이 남수산 정상길, 지금부터 능선길이다. 밀나물·고사리·산앵도·산작약과 원추리 노란 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등산로 입구에 정자가 서있다. 모이는 장소로 쓰인다.

 

가뭄 때 기우제 지내던 산

오전 10시 반 가진봉 남수산(437m) 정상에 닿는다. 지형도에는 429m로 나와 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표지석은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감을 준다. 산 이름과 딱 맞다. 산기운과 아지랑이를 뜻하는 남嵐, 돌구멍 수峀. 바위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남수산嵐峀山으로 불렸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매화면 매화·금매리에서 근남면 구산리 안잘미마을까지 뻗었다. 

 

패철을 대어보니 유좌묘향酉坐卯向이라 서쪽을 등지고 동해가 멀리 보이지만 흐리다. 땀에 젖은 옷은 산바람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붉은 껍데기의 소나무는 수령이 족히 300~400년은 될 것 같다. 대령산 방향으로 5분 거리에 격암格庵 남사고南師古(1509~1571) 학습 터가 있다. 절터같이 널따란 곳인데 괜스레 눕고 싶어진다고 했더니 일행은 모기·날파리에 다 뜯긴다고 웃는다. 북두칠성을 바라보기 좋은 터, 처진소나무·참나무가 지키고 있다. 

 

선생은 중종 때 근처 근남면 수곡리에서 태어나 여러 번 벼슬에 낙방한 뒤 천문지리와 복술卜術에 도통, 예언이 틀리지 않아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린다. 임진년에 백마가 침범하리라 했는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십승지十勝地를 비롯 병자호란·임진왜란·일제침략·남북분단·6·25전쟁 등을 예언했다고 전한다. 초가를 짓고 술을 즐겼으며 전국 명산을 다니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품행이 고결해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강릉부사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남사고에게 역술을 배워 통달했다고 한다. 죽음과 절손絶孫을 알았고, 부친의 묘는 아홉 번 옮기고 열 번 장사 지냈다는 구천십장九遷十葬으로 유명하다.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어서 억지로 차지하기 어렵다는 교훈적 이야기이다.

 

나무계단이 미끄러워 저마다 엉거주춤 내려가는데 흙과 나무 사이마다 삽주는 곧 터뜨릴 듯 봉오리가 탱탱하다. 다시 삼거리. 안개 산 아래 형국은 매화만개梅花滿開. 윤·최·남씨 등 씨족의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마을로 시내와 하천·들판이 펼쳐져 있다. 지역 최초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반대 방향 콘크리트 포장길 10분 더 지나서 군사시설인데 출입금지다. 뱀을 두 번이나 봤다. 근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 일본 승려 현소玄蘇를 시켜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수산은 원래 여기가 정상, 진봉이라는데 군부대가 차지했다. 지역의 영산靈山이지만 북서쪽으로 광산개발이 되면서 산을 망쳤다. 구산리 남사고 묘소에서 쳐다보면 안타깝다.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던 일본 탓할 것 없이 선조들이 후손을 잘못 만난 것.

 

남수산의 소나무 숲길.

 

삼거리 지나 임도와 산길 합류 지점인데 임도를 따라 내리 걷는다. 으름덩굴은 어느덧 열매를 달았는데 풋풋하다. 시멘트 포장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심해서 무릎에 부담이 간다. 뒷걸음치며 걷기도 하고 옆으로도 걸으니 피로는 한결 덜하다. 군부대까지 내려왔지만 어설픈 옆길로 겨우 빠져나왔다. 산 위에서부터 출입불가 안내표시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오쯤 농업기술센터로 내려왔다. 

마을에서 산꼭대기 올려다보니 통신 안테나가 우후죽순처럼 솟았다. 오히려 일행들을 굽어보는 듯하다. 모처럼 흘린 땀 냄새가 벼 익는 냄새와 섞여 코끝을 실룩거리게 한다. 

 

안개로 신비로움을 더한 남수산 정상.

 

산행길잡이

등산로 입구(울진군농업기술센터 정문 앞 정자) ~ 제1쉼터 ~ 제2쉼터  ~ 임도 갈림길(시멘트길) ~ 제3쉼터(정상 갈림길) ~ 정상 ~ 격암 학습 터 ~ 정상 ~ 제3쉼터(정상 갈림길) ~ 군사시설 입구(출입금지) ~ 제3쉼터(정상 갈림길) ~ 임도·산길 갈림길 ~ 울진군농업기술센터 뒤(약 4.3km, 3시간 정도)

※ 내려갈 때는 임도로 가지 말고 산길로 되돌아서야 한다. 

 

교통

산행기점인 매화면 매화리는 버스가 다니지만 불편하다(매화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 매화면 소재지에서 걸으면 등산로 입구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 이용 시 ‘경북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울진군 농업기술센터’를 목적지로 하면 된다. 정문 앞 정자가 산행 들머리, 농업기술센터에 주차할 수 있다.

 

 

숙식

울진읍, 근남면, 죽변항구로 나가야 한다.

 

주변 볼거리 

몽천샘, 삼조어비각, 남사고 묘, 남사고 유적지, 성류굴, 왕피천공원, 망양정, 덕구온천, 매화 이현세 만화거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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